배려는 따듯하다
배려는 따듯하다
  • 제주신보
  • 승인 202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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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문간에 누가 다녀갔다. 수도계량기 통 뚜껑이 이가 맞지 않다. 검침원이 바늘을 읽고 바삐 닫느라 마무리가 덜 됐겠다. 웃으며 맞춰 놓았다. 웃음으로 생긴 여유에 마음 느긋하다.

걷기운동에 나서며 클린하우스 곁을 지나는데 턱없이 큰 종이상자가 패대기쳐 있다. 어느 집에 대형TV를 들인 모양이다. 포장했던 상자가 길바닥에 널브러져 볼썽사납다. 접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길을 가로질렀는데 지나칠 수가 없어 질질 끌어 ‘종이류’ 쪽에 붙여 놓았다. 더 들일 수 없으니 임시변통으로 한 것인데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하릴없이 걸음을 뗄 수밖에. 누군가 자신의 섣부름을 뉘우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된 것이다.

맵짜게 추운 겨울날 버스에 오르는 젊은 아기 엄마가 힘겨워 보였다. 아기를 처네로 가슴에 안고 또 한 손으론 갓 걸음 뗀 아이를 붙들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았던 여고생이 선뜻 자리를 양보한다. 두세 걸음 내딛어 손에 이끌린 아이까지 엄마 앞으로 안아다 앉힌다. “아이고, 학생 고맙네요.” “아닙니다.” 그 순간, 차창 너머로 들어오는 뭉게구름처럼 웃음이 퍼진 두 얼굴이 발갛게 상기 돼 있다. 남을 배려하는 한 소녀가 만들어 낸 차 안 풍경이 훈훈하다.

읍내 집을 육지에서 귀촌한 이에게 넘기고 얼마 뒤 이사한다. 주인이 될 30대 젊은 부부가 잔디마당과 정원의 나무를 무척 좋아한다. 수십 종의 나무 이름을 자근자근 물어 올 정도다. 서른 해 동안 물주고 북돋아 키운 것들을 두고 어떻게 돌아설까 마음을 졸이던 참인데, 좋은 사람을 만난 게 그나마 위안이다.

비 뒤 볕 좋은 날, 잔디마당에 검붉게 돋아난 괭이밥들을 호미로 파냈다. 이악한 녀석들이 퍼지면 잔디가 엉망이 될 것이라 그냥 둘 수가 없다. 뽑느라 여러 날 마당을 휘저었다. 내 뒤를 이을 사람들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일이 즐거웠다. 엊그제 젊은 부부가 집이 보고 싶다며 찾아왔다. 마당을 맸던 호미 자국을 가리키며 내 노역을 과시(?)했다. 활짝,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우리 내외도 함께 웃었다. 남을 위해 작게나마 무얼 해 줄 수 있는 기쁨은 의외로 컸다.

코로나19가 가라앉으면서 우리 하늘을 뒤덮던 먹장구름도 말끔히 걷혀 간다. 지난 몇 달 동안 참 힘들었다. 하던 일을 멈춰야 했고, 가던 곳에서 떠나왔고, 만나야 할 사람과의 만남마저 주춤거렸다. 늘 쪼들려 온 농민들, 영세한 소상공인들, 도시의 그늘진 곳에 삶을 부린 소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어떻게 다독일까. 더욱이 우리 어린 학생들, 입학식도 못한 채 학교가 바뀌고 한 학년의 새 계단에 올랐지 않은가. 미증유의 재난 앞에, 그동안, 우리 얼마나 발 동동 굴렸던가.

방역 종사자들, 바이러스가 득실거리는 현장에서 컵라면으로 끼를 때우며 죽기 살기로 자신을 희생한 그들은 ‘이름 없는 영웅’이었다. 나는 지금, 귓전으로 낙숫물처럼 지는 소리를 듣다 아지랑이 어른거리는 봄의 들녘으로 눈을 보낸다. 방역대책본부 정은경 본부장이 과로를 걱정하며 묻는 취재진에게 답한 그 말, “한 시간은 자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심성을 ‘끈기’라 말하는 오랜 관념이 이번처럼 빛난 적이 일찍이 없었다. 촘촘한 선제적 방역과 시종여일 흔들림 없는 끈기에 세계가 놀랐다. 이 모두 남을 위한 ‘배려’의 마음이었다. 배려는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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