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과도한 업무로 태아 건강 이상 '첫 산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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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 소송 제기...대법, '산재 인정된다' 첫 판결

제주의료원 간호사인 변모씨는 2010년 10월 아이를 낳았다. 출산의 기쁨도 잠시, 아기는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변씨를 포함해 2009~2010년 임신한 동료 간호사 15명 중 4명(27%)이 낳은 아기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졌다.

또 5명(33%)은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나머지 6명(40%)만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제주의료원은 당시 인력 부족으로 간호사들은 3교대의 강도 높은 근무를 했고, 임금 체불로 간호사들의 이직이 잦았다. 간호사수는 정원 대비 60% 수준에 머물러 1인당 40~60명의 환자를 돌봐야 했다.

특히 입원환자 대다수가 70세 이상 고령이라 알약을 삼키지 못해 간호사들은 작은 절구에 알약을 넣고 빻아야했다. 제주의료원에는 알약 자동 분쇄기조차 없었다.

이 알약 중 일부는 사람에게 기형을 유발해 임신부와 가임기 여성은 취급을 금지한 약물도 17종이나 있었다.

간호사들은 이 같은 유해약품을 빻다가 산모·태아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2012년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에 요양급여를 청구했으나 불승인됐다.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의 부상·질병·장애·사망에만 해당되고 자녀(태아)는 산재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변씨 등 간호사 4명은 2014년 2월 서울행정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의 거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길고 긴 법정 다툼이 이어졌다.

2014년 12월 서울행정법원은 “여성 근로자의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해 태아에게 건강 손상이 발생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며 간호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로 태아에게는 독립적 인격이 없으므로 태아에게 미치는 어떤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권리·의무는 모체에 귀속된다”면서 임산부와 태아가 한 몸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2016년 5월 서울고등법원은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사유로 생긴 태아의 건강 손상으로 비롯된 출산아의 선천적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결국 최종 판단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변모씨 등 간호사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업무가 원인이 돼 발생한 태아의 건강 손상은 산재보험법이 정한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태아의 건강 손상을 여성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최초의 판례다.

현재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 4명 중 2명은 지금까지 소아심장내과 진료를 받고 있다. 간호사 4명 중 1명은 퇴직을 했다.

의료연대 제주지역본부는 성명을 내고 “10년이 지나 드디어 대법원에서 태아의 선천적 장애가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단지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예방 차원에서 여성 노동자가 안전한 일터에서 모성권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큰 발판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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