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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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오월은 봄의 끄트머리, 계절의 현란한 피날레다. 밀물로 가득 채워 놓은 만조(滿潮) 때, 시골 바다 포구처럼 충만한 달이다. 봄을 접으려는 길목으로 햇살이 따사롭고 살랑대며 이마를 스치는 바람도 유순하다.

백 가지 꽃이 선후를 다퉈 피니 세상이 온통 꽃 사태다. 무덕무덕 꽃으로 덮여, 눈앞에 벌어진 꽃의 축전(祝典), 천지가 꽃·꽃·꽃, 눈이 부셔라.

저 꽃들, 저마다 소소한 사연 하나씩 품고 있으리. 어느 것은 정인(情人)에게 숨어 피어 슬며시 기별 전하려, 어느 것은 순전히 수사 같은 탐미적 추구로, 혹은 쾌락의 절정을 휘청거리다 세공하고 채색했으리. 떠나간 임의 영혼 앞으로 다가앉으며 소복단장해 처연한 모습이기라도 한가, 외진 들녘에 흐드러진 희디흰 저 꽃들.

나른한 에메랄드빛 무게에 겨워 하늘이 낮게 내려앉는다. 흐르는 구름도 버들개지처럼 보송보송 보드레할 것인데, 곱게 치장해 지향도 없이 어디로 흐르는가. 저 유장한 흐름의 몸짓은 어디서 비롯하는지, 잔뜩 찌푸렸다가도 오월이 오면 정처 없는 행보, 어디로 흐르나. 조촘조촘 임이 오시리라 오월의 길목으로 나앉고 있나.

오월에게 묻노니, 흐르는 구름의 저 율동은 어디서 발원한 것이며, 무슨 의미인지. 잔뜩 뒤덮였다 가슴 열어놓고 유랑으로 흐르나니….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담뿍 오월을 머금은 앳된 목청들 뒤로 키득키득 물 오른 웃음소리, 발돋움하며 하늘 우러르는 아이들 눈에 오월이 잔잔히 호수처럼 고였다.

바다가 뼈대를 세우며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물결에 둘둘 말리며 긴 여정에 올라 쉴 새 없이 촐랑거리는 바다. 물 위를 스치는 해연풍에 자디잔 문양을 아로새긴다. 바다의 섬세한 저 동요, 풀었다 당겼다, 균형이고 절제다. 물의 흔들림은 그냥 자발적 리듬이라, 저걸 모방해 시(詩)다.

푸드덕, 무한 허공으로 새 한 마리 뜬다. 순간, 오월을 차오르는 서슬에 지축이 휘청한다. 저 새 오월의 하늘에 닿아 기어이 구만리장공을 날리라. 그리곤 이내 강하하리라. 날았던 바로 그 지점으로 연착륙하는 오월의 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오월에 야금야금 허물을 벗는다. 정원의 나무며 길섶의 풀들, 어느새 색의 반란을 일으켰다. 연둣빛에서 번져 진초록으로 일탈·해체하며 심화한다. 여름으로 가는 오월의 빛깔이 경이롭다. 뼛속도 초록이라더니, 더 짙고 깊고 싱그러워진다. 더 오묘하고 충일하고 서늘하다.

한여름 땡볕 아래 그늘이 깊어 선선하리니, 이 오월에 부들거적 한자리 펴 책장 넘기고 글 몇 줄 쓰면 좋겠다. 펄펄 끓는 폭염에서 비켜나면 그대로 여름 속 내 영역이거늘 나, 꼭 그러하리라. 단단히 언약하니, 미세먼지 나쁨에도 오월엔 신바람이 난다. 작은 숲속에 갇히면 스멀스멀 스미는 향긋한 오월의 내음, 향기에 절면 들숨 날숨 숨결조차 푸르다, 숨이 푸르니 마음도 꿈도 푸르다.

공원을 거니는데, 킥보드 타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빙상을 미끄러지는 몸짓이다. 씽씽 달리다 한 아이가 나뒹굴었다. 바라보며 웃는 아이들, 겸연쩍어 털고 일어나는 아이의 눈망울에 진득이 들앉은 오월, 오월이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망울들, 오월의 풀잎 끝 아침 이슬이다.

코로나가 걷히는 세상, 사람들이 활기차게, 다시 시작이다, 다들 오월에 신바람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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