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잡이와 바람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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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

여름밤 제주의 바다는 불야성을 이뤘다. 붉은 노을이 사라지면 갈치잡이 배들이 등불을 밝히고 바다로 나갔다.

은빛의 펄(pearl)이 있어야만 제주산 은갈치로 쳐준다. 그래서 어민들은 그물이 아닌 낚싯줄에 16~20개의 낚시 바늘을 연결한 주낙낚시로 갈치를 잡는다. 그물로 잡아 은빛 펄이 쓸리거나 손상된 ‘먹갈치’는 제값을 받지 못한다. 세네갈·인도에서 수입된 갈치가 ‘먹갈치’다.

제주 앞 바다에 갈치가 사라지면서 먼 바다로 나가는 원정조업이 보편화 됐다. 600~700㎞ 떨어진 동중국해와 대만 인근 해역에서 갈치를 잡는다. 한 번 출항한 어민들은 30~40일을 바다에서 산다.

기름값과 어구비용, 부식비를 제하고 선원들이 돈을 벌려면 비바람이 쳐도 갈치를 잡아야 한다. 먼 바다에서 바람이 잔잔해질 때까지 3~4일간 조업을 중단하면 손실을 메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제주에 선적을 둔 근해 연승어선 147척에는 일명 ‘바람막이’가 설치됐다. 그물을 사용하는 일반 어선은 갑판이 노출된 반면, 연승어선 갑판은 강화플라스틱(FRP)으로 감싸고 있다.

조업 편의시설인 바람막이에는 작은 여닫이 창문이 있다. 바람이 불어도 창문을 열면 갈치를 잡을 수 있다. 낚시줄의 날림과 낚시도구의 유실 방지, 원활한 미끼 작업에 도움이 된다.

파도가 일어도 선원들이 바다로 떨어지지 않거나 다치지 않는 이유는 견고한 바람막이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먼 바다로 나가는 연승어선 147척에 바람막이가 설치된 것은 제주어민들의 경험의 산물이다.

그런데 해양수산부는 2017년 5월 1일부터 바람막이 시설을 선복량에 집어넣었다. 선복량은 배에 실을 수 있는 짐의 총량으로 즉, 적재 능력을 뜻한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은 39t급 연승어선에 바람막이를 씌우면 선복량은 76t에 이른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선복량은 배의 총중량(39t)의 약 두 배에 달했다. 선복량은 연승어선을 새로 건조할 때나 중고선을 매매할 때 기준이 된다.

연승어선은 1t당 건조비가 2000만원 안팎이다. 39t급 배를 건조하려면 약 8억원이 든다. 그런데 바람막이(37t)를 선복량에 합산하면 16억원을 줘야 배를 살 수 있다.

어선업 허가증과 함께 거래되는 중고 어선 역시 바람막이를 선복량이 포함하면 매매 가격이 기존 가격보다 두 배나 껑충 뛰었다.

도내 연승어선 147척 중 70%는 15년이 넘은 노후 어선이다. 배는 낡고 전기 배선이 이리저리 얽혀 있어서 먼 바다에서 화재가 나거나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제주어민들은 새 배로 교체하고 싶어도 바람막이를 선복량이 포함하는 바람에 건조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어민들은 2017년 5월 1일 기준으로 이전에 건조된 배의 바람막이는 선복량에서 제외하고, 이후에 건조한 배들은 포함시킨 이유를 묻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가 제주도 현지 국정감사에서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해수부는 어선 화재 시 위험성이 높고, 복원력 문제로 바람막이를 선복량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어선 화재 시 인명 피해는 배의 바닥인 선창에 선원들의 침실이 설치돼 화마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가 높다. 제주어민들과 제주특별자치도가 선원 침실을 개선하는 데 공감대가 있는 반면, 해수부는 여전히 바람막이 제한을 고집하고 있다.

갈치잡이 어민들은 원정 조업의 현실을 감안, 바람막이를 원한다. 이를 규제하면 낡은 배만을 계속 타야 할 상황이다. 제주어민에게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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