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고하는 메아리에 젖어들다
허공에 고하는 메아리에 젖어들다
  • 제주신보
  • 승인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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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행기머체(下) 오월의 꽃처럼 서 있을게

오름 내부 마그마 외부로 노출되며 형성된 용암덩어리
시·춤·음악 그리고 풍경이 오월 더욱 푸르게 물들여
바람난장 가족들의 올해 첫 번째 무대인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행기머체’는 자연의 섭리를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곳이다.

연두가 초록이 되기까지 나무는 얼마나 많은 속내를 앓아야 할까. 나무나 사람이나 생채기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오히려 삶을 단단하게 매어주는 말뚝 같은 역할을 한다. 오월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계절이다. 신록이 우거지면 곧 여름이 당도한다는 신호다. 자연도 계절도 이렇게 부지런히 제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한다. 

바람난장의 첫 문을 연 가시리 ‘행기머체’는 그런 자연의 섭리를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곳이다. 행기머체는 오래전 소화산체(오름) 내부에 있던 마그마가 시간이 지나 외부로 노출되면서 형성된 용암덩어리이다.
특히 지하용암돔으로도 잘 알려진 ‘크립토돔’의 지질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높이가 7m, 직경이 18m의 암석으로 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유일한 분포지이며, 동양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앞에 서면 ‘화산섬의 범종’(오승철의 시)같다는 문장이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행기머체’라는 이름은 놋그릇을 뜻하는 ‘행기’와 커다란 돌무더기를 이르는 ‘머체’가 합쳐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바위 위에 놋그릇에 담긴 ‘행기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어디선가 ‘고시레~ 고시레~’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시레는 들에서 일을 하다 새참을 먹을 때 음식을 조금 떼어서 들판에 던지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해서 행해지던 의식이다. 우리 조상들은 들판에 나들이를 가서도 고시레를 외치며 자연과 함께 음식을 나눴다. 오승철 시인의 시에서 ‘고시레’는 위대한 자연에 대한 어떤 존경과 경배가 깊게 스며 있다. 4·3으로 황폐해진 들녘을 향해 울먹거리는 회한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

김정희와 시놀이 팀에서는 노오란 유채꽃으로 행기머체를 향해 ‘고시레’를 외친다. 헌화가의 노옹처럼 꽃을 바쳐 이 오월을 얻었으니 낭송 또한 맑고 경건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그러니까 
정말로 거짓말 같이
누가 단을 쌓고 설법한 것도 아닌데
멀쩡한 봄의 들판에 솟아난
놋그릇 바위

이 세상 어느 허기 돌아오질 못하는가
오름 두엇 집 두엇
갑마장길 무덤도 두엇
사람이 왜 왔느냔 듯 수군수군 갈기 몇 개

성읍에서 의귀리
또 거기서 가시리
<4·3땅> 화산섬의 범종 같은 바위 앞에
“고시레” 허공에 고하는
산메아리 젖는다

-오승철, <행기머체-제주에 이르시거든 행기머체 앞에서 “고시레”하고 가시라> 전문.

강다혜 무용가의 춤사위가 초록 들판에 솟은 행기머체와 어우러진다.
강다혜 무용가의 춤사위가 초록 들판에 솟은 행기머체와 어우러진다.

강다혜 무용가의 춤사위가 이어진다. 연초록 들판에 우뚝 솟은 행기머체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 파란 물결이 이는가하면 어느새 하얀 바람이 슬몃 끼어든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풍경.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사람도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춤은 그렇게 흐르면서 오월의 들판을 보듬는다.

성악가 황경수님의 ‘서툰 고백’이 연둣빛 여린 감성을 뿜어낸다.
성악가 황경수님의 ‘서툰 고백’이 연둣빛 여린 감성을 뿜어낸다.

반주와 노래를 동시에 하는 성악가 황경수님의 ‘서툰 고백’이 연둣빛 여린 감성을 뿜어낸다. 떨림과 울림은 한 가지에서 나온 것처럼 가슴을 수시로 넘어 들며 마음을 애린다. 두 번째 곡  ‘마중’은 허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연둣빛 들판을 마중 나온 봄바람의 자분자분한 목소리. ‘사는 게 무언지 허무 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행기머체처럼 심장에 박혀버린 노랫말이 들판을 휘젓는다.

유난히 반가운 초록빛 자연이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유난히 반가운 초록빛 자연이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시와 춤과 음악 그리고 풍경이 오월을 더 푸르게 푸르게 물들인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욕망과 고집과 이기심을 내려놓게 만드는 자연. 우리도 오월의 꽃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서 있는 계절이 되자.

사회=정민자
음악=전병규·현희순(소금 연주)
시낭송=김정희와 시놀이
          (이정아·이혜정·장순자)
무용=강다혜, 그림=홍진숙
성악=황경수, 음향=김송
사진=허영숙, 영상=김성수, 글=김효선

※다음 바람난장은 5월 16일 오전 10시 와흘리 감귤꽃밭 일대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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