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액젓에 담은 사랑
멸치액젓에 담은 사랑
  • 제주일보
  • 승인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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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자 수필가

하늬바람을 이겨낸 동백이 의연하게 하늘을 향해 있다. 매화는 앙증맞은 얼굴을 내밀며 아침 인사를 건넨다. 봄이 오는 소리는 들리지만, 아직 바람은 차다. 소식을 들은 것은 계절의 길목인 입춘 아침이었다.

일 년 만에 뵙던 날, 긴 투병 생활로 몸은 더욱 작아지고 가까스로 튜브에 의지하여 삶을 버텨 내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연락을 받고 간 곳은 중환자실이었다.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시며 반응을 보인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소풍 끝나는 날이 다가오고 있음에, 차마 발길을 떼기 힘들었다.

첫 번째 과제는 3월 안에 끝내야 하는 환경정리다. 평일 방과 후와 주말, 그리고 일요일까지 애를 썼으나 다시 꾸미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우리는 서서히 주눅이 들기 시작하였다.

시험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늦은 밤이라도 가정방문을 하겠다고, 불이 꺼져 있으면 공부를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순진한 소녀들은 불을 켜놓고 자면 되지 뭐하는 기막힌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재시험이다.”

반 평균 점수가 기대에 미치지 않았다며 의자를 들고나와 운동장에서 시험을 치르게 했다. 의자는 책상으로 변신하고, 무릎은 땅에 대고 시험을 치르는 형국이란.

교내 체육대회 날은 열성 감독으로 변신하는 바람에 목이 다 쉬었다. 반 대항 송구대회에서 골을 많이 넣은 친구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응원선수였던 나도 승리의 기쁨을 가족들에게까지 전하였다.

선생님의 가정방문계획에는 독특한 셈법이 숨어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학부모들이 들이나 밭에 나가지 않으리라는 기대였다. 가정방문 갈 때는 친구와 나를 데리고 갔는데, 반 친구 어머니가 끓여준 라면을 대접받았던 기억은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리와 생활한 지 일 년 만에 고향으로 떠났다. 어둠을 밝혀주던 등대가 갑자기 보이지 않아 두려웠다고 할까. 애증이 섞인 시간을 회상하며 아쉬워했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주말에는 친구들하고 선생님 댁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거의 뵙지 못하였다. 그 후에는 의례적인 연하장으로 안부를 대신하였다.

가끔 뵐 때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였다.

단발머리 소녀의 기억으로 굳어졌을까. 성인이 된 지 오랜 제자를 도닥거려주고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 싶다.

선생님이 섬 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친정집에는 나에게 전해달라는 멸치액젓이 주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액젓은 섬에서 나는 특산물 중의 하나였다.

잘 숙성된 액젓은 우리 집 음식에 사랑의 감칠맛으로 더해졌다. 촉촉하다 못해 따스하다. 친정어머니는 너는 두 분의 아버지를 둔 행복한 아이라고 말씀하시곤 하였다. 무엇이 스승과 제자로 40여 년 넘은 질긴 인연으로 이어오게 한 것이었을까.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더께들. 마지막 가는 길은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하여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흑백사진처럼 지난날을 소환하고 싶어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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