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제주무속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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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평론가/논설위원

이태원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무렵 제주 심방이 종로에 나타났다. 종각역의 ‘문화공간 온’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들어찼다. 제주다운 제주를 위해 싸우고 있는 ‘육지사는 제주사름’(대표 박찬식, 문원섭)이 주최한 강연회였다. 사무국장인 강은영 씨는 길게 강연자 한진오 씨를 소개했다. 강연자는 4·3사건과 제주의 난개발을 문제 삼으며, 제주의 무속 지키기에 나선 학자이자 예술가이면서 실제 심방의 길을 걷는 인물이라 했다. 그는 ‘상상과 실상의 교차로-제주도 굿에 나타난 주술적 사실주의-’라는 제목으로 신화가 어떤 무속제의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하는지를, 제주 방언에 시나위가락까지 섞어가며 흥미로운 굿판을 벌였다.

심방들의 노랫가락 속에서 흘러나오던 ‘천지왕, 삼승할망, 전상차지 가믄장아기, 자청비, 궤네기또’는 이제 제주의 신화로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의 문헌 기록으로는 존재하지 않던 천지창조의 신화를 비롯해 제주 큰굿 열두거리에 담아내는 본풀이, 그리고 당신본풀이와 조상신본풀이의 세계는 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정말 독특하고 흥미로운 신화들이다. 이 신화들은 제주의 가치를 드러내면서 세계에서도 돋보이는 문화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제주의 본풀이를 비롯해 모든 신화가 ‘굿’이라는 의례를 통해 구현된다는 사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굿판의 모습은 없애버리고 이야기만 쏙 빼서 보고 있으니 진짜배기를 모른다. 굿놀이 현장을 모르고 채록된 이야기만 신화라 하여 즐기는 것은 문제라고 강연자는 힘주어 이야기했다.

심방이 요령을 흔들며 장구나 북을 직접 연주하면서 노래와 사설을 곁들이는 ‘말미로 푸는 방식’, 심방이 일어서서 북장단에 맞춰 노래를 하는 ‘소리로 푸는 방식’, 반주 없이 심방이 소리와 말미를 섞는 ‘곡지로 푸는 방식’ 등 굿판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 거기에 굿을 치르는 이유를 고하는 ‘연유 닦음’, 심방 자신의 무당내력을 신께 고하는 ‘공시풀이’, 죽은 자와 산 자가 심방을 매개로 만나는 ‘영게울림’ 등도 존재한다. 문자화된 제주신화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이런 굿판의 메커니즘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제주를 대표하는 무속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한갓 미신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신과 사제(무당)가 있으며 신도가 있는, 엄연한 종교라 할 무속을 미신으로 낙인찍는 것은 제국주의적 발상이다. 무속은 불교나 기독교처럼 세계 종교로 발돋움할 만한 종교는 아니지만 제주민중, 한국인의 심성구조를 담아내면서 아직도 살아있는 종교다. 판소리, 산조, 살풀이춤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의 뿌리도 남도 시나위 굿판에서 비롯되었다. 만화와 영화로 제작된 ‘신과 함께’, 드라마로 제작된 ‘도깨비’도 모두 제주의 신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들이다. 일본의 무속은 ‘신도(神道)’라 하여 누구도 미신이라 매도하지 않으며,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세계화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는 멀쩡하게 살아있는 민속신앙을 숨기고 발전시킬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주무속이 떠받드는 신들은 자연이다. 하늘과 땅, 산과 바다, 나무와 바위 등 온갖 생명 낱낱이다. 근대의 인간 중심주의는 그 자연을 파괴하는 데 혈안이 된 까닭에 코로나 상황까지 맞게 된 것이다. 황폐해져 가는 지구의 진정한 치유는 자연을 온전히 모시는 것에서 온다. 생명을 살리는 꽃들은 제주무속 속에 활짝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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