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처럼 가벼이
꽃잎처럼 가벼이
  • 제주일보
  • 승인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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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평소 TV 여행 채널을 즐겨 시청한다. 현실감은 떨어지지만 앉아서 지구촌 곳곳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래전 갔던 여행지를 화면에서 만나는 반가움은 첫사랑처럼 애틋해 그립다. 다시 저곳을 갈 수 있다면,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은 아쉬움과 동경으로 설렌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빗장을 걸었다.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여행객들이 발이 묶였다. 언제 문이 활짝 열릴지 가늠할 수 없다. 앞으로 선뜻 내 나라를 떠나는 여행은 두려움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한곳이라도 더 가고 싶었다. 저물어가는 인생을 행복한 추억으로, 몸이 허락한다면 되도록 멀리, 여의치 않다면 가까운 곳인들 어떠랴 생각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난데없이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혔다. 하릴없이 단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울자 차라리 홀가분하다.

단지 코로나19 문제만은 아니다. 최근 행동반경이 매우 좁아졌다는 걸 느끼고부터다. 가을이면 빠짐없이 다랑쉬오름을 올랐지만 두 해를 걸렀다. 거기다 높고 낮은 오름이며 휴양림을 찾던 나들이가 줄었거나, 아예 못 간 지 오래다. 매일 집에서 걸어 돌아오던 별도봉 둘레도 몇 달째 발길이 뜸하다. 점점 좋아하고 즐기던 것들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나만 달라지는 게 아니다. 노상 찾던 곳도 오랜만에 보면 예전 같지 않다. 내가 변해 가는 동안 세상의 사물도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걸 보면서, 쓸쓸한 심정을 다독이기는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있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예사롭게 넘길 수 없다. 이제는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을 서서히 멀리해보라 한다. 역버킷리스트를 한번 생각해보라고. 욕심에 매달려 옥죄는 삶을 살지 말라는 뜻이 가슴에 닿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숨 가쁘게 달려온 길이, 심신을 황폐화한 건 아니었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종종 지식과 상식이 풍부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지금까지 얻고 쌓은 것 중에서 무엇부터 멀리해야 할지. 가려내는 일을 서둘러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세끼 거르지 않고 먹고 자고 하는 변화 없는 생활은, 행동의 관성적 반복일 뿐 큰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라 여겼다. 비슷한 일상이 어느 날 가장 엄숙한 삶의 의식 중 하나라고 깨달았다. 생존의 근원이자 원초적인 것, 귀중한 것을 알지 못했던 우매한 생각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욕심에 가려 높은 곳만 바라보느라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친 건 얼마나 많으랴.

나이 들면 한층 현명해진다고 한다.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과 지혜가 원숙함을 낳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넓어지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닐까. 담담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생활로 돌아서면, 한결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욕심을 줄인다면 실천도 쉬우리라. 일상을 가볍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무심하게 사는 것도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 아닐지.

이제부터 자식들과 거리 두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이 들어가며 품을 떠난 자식에 대한 애정도 일종의 집착이다. 간섭과 바람은 내 품에 가두고 싶은 욕심이 아니겠는가. 그들도 가정을 이루었고 성숙한 사회인이다. 거리 두기로 그만큼 거리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면 되는 것이다.

올가을에는 야고와 솔체꽃을 만나러 다랑쉬오름을 오르고 싶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가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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