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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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는 일단 ‘줄을 잘 서야’ 한다. 군대에서도 그렇고, 공(公)·사(私)조직이나 정치권에서도 줄을 잘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신간이 편하고, 훗날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재수 없이 줄을 잘못 섰다가 낭패를 당했다는 푸념도 자주 들린다. 같은 조건이라도 어느 줄에 서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리고 운명까지 좌우한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우리사회는 줄에 마음을 졸이고 촉각을 곤두세운다. 어느 줄에, 어떻게 선을 댈 것인지 고민하고, 자신이 선택한 줄의 득실에 대해 저울질한다.

줄서기 경쟁이 심한 곳으로 역시 정치권을 빼놓을 수 없다. 18대 총선이 끝났지만, 그 유난스럽던 계파‘줄서기’ 의 뒷탈은 계속되고 있다.

정책이나 철학보다는 어느 편에 속한 인물이냐가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이른바 친이(親李) 친박(親朴)으로 상징되는 ‘계파 공천’ 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으로 홍역을 치렀다. 그것이 선거쟁점으로 부상하고 생존의 변수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줄서기 경쟁은 뜨겁다. 나중에 뭔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보상심리 때문이다.

특히 권력의 변화를 예고하는 선거에서의 줄서기 경쟁은 일반의 상식을 물론이고 의리마저 내팽개치기 일쑤다. 눈치작전과 이합집산은 기본이고 ‘어제의 적’과 ‘오늘의 동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줄 서기’와 ‘줄 갈아타기’가 난무한다.

‘줄 서기’의 대미는 선거가 끝난 이후에 구체화된다. 지난해 말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한나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력서를 보내거나, 지인을 통해 부탁하는 사례가 하루에도 수백건씩 몰려들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그 고충을 토로한 적 있다.

유력 무소속 후보가 많이 등장한 최근 총선에서는 지방의 선량들이 마음고생을 했다. 무소속 유력후보를 밀고 싶지만, 당 소속 후보를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선 “낮에는 A후보, 밤에는 B후보 선거운동을 한다”는‘양다리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지방선거에선 공무원들의 은밀한 줄서기가 횡행한다. 선거 이후 줄서기를 잘 한 공무원은 은연중에 단체장의 호감어린 눈빛을 기다리겠고, 또 다른 한쪽에선 불이익성 인사태풍에 휘말릴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무원들이 은밀하게 특정후보를 밀어서 당선시킨 뒤에 이에 대한 보상을 인사에서 바라는 품앗이 행태의 비리사슬이 풀뿌리 지방자치를 멍들게 한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줄을 잘서는 것도 능력일 것이다. 하지만 줄에 의존해 입신출세를 꾀하는 인사들에게 주민을 위한 봉사와 섬김을 기대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들은 마치 해바라기처럼 권력자를 향해 ‘위’만 쳐다볼 뿐 ‘아래’를 향해 마음을 열 것 같지 않다. 그 마저도 소신 있는 일편단심 해바라기라면 좋으련만, 그 권력이 쇠퇴할 기미가 보이면 어느 샌가 다른 줄을 찾아 나선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의 인간관계는 신뢰보다 ‘이용 가치’를 중시하기 마련이다. 줄서기가 만연되는 이유는 개개인의 능력이나 실력보다 ‘연줄문화’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데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듯 병폐를 초래하고 있는 줄서기는 공공의 질서유지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규율이다.

버스정류장, 화장실 등 공공장소에서 줄서기를 실천하라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러한 질서 개념의 줄서기가 우리사회에서는 자기안위를 도모하기 위한 ‘기회’의 개념으로 변질되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줄’의 힘을 약화시키고 ‘줄’ 권하는 문화를 질서의 개념으로 전환할 방안은 없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높은 자리’가 권력으로서 지배하며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몸을 낮춰 봉사하고 섬기는 자리라는 지도층의 진정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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