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향수, 아그배나무꽃 향과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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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전 제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시냇가 열다섯 살 아가씨/ 수줍어 말없이 임을 보내고/ 돌아와 문을 꼭 잠그고/ 달빛 어린 배꽃보며 눈물 흘린다라고 임제는 읊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날에 피어나는 배꽃 향기와 달빛이 손에 닿을 것 같다. 배꽃은 춘색의 기다림을 자아내게 하는 봄의 요정과도 같다. 그리고 배꽃에 사랑앓이가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이 느낌을 향기로 창작해 오랫동안 곁에 둘 수 있으면 좋겠다.

올해는 아그배나무꽃이 유별나게 도드라져 보인다. 이 꽃은 찰진 햇쌀밥보다 더 윤기가 감돈다. 한편으로는 아그배나무에 아지랑이가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요조숙녀 자태를 한 붓꽃은 이 나무 옆에서 너무 차분하고 여유롭게 보인다. 이 모습들을 오래도록 담아놓을 수도, 모방할 수도 없다.

향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흉내 내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과 욕구의 산물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 삶의 한 토막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자연의 미적 향기를 영원히 품고 싶고, 마음의 변화에 따라 내 주위에 맴돌게 만들고 싶은 욕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향기의 원천은 식물이다. 식물이 가진 다양하고 오묘한 향에 취한 사람들이 이를 추출해서 병에 보관하는 방법과 응용하는 방법을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천상의 향기, 아그배나무꽃의 향과 자태를 생산할 수 없다.

식물은 부위마다 각기 다른 향을 응축·저장하고 있다. 그중에서 꽃이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담고 있다. 현재도 매년 개발되는 수많은 향수 중에 플로랄계열이 으뜸이고, 일상생활에서 가장 즐겨 사용하는 향료도 꽃에서 얻는 경우가 많다.

아그배나무꽃은 천상의 향기를 품고 있고, 고추나무꽃은 지상의 향기를 잉태하고 있을 것 같다. 제주도의 한 숲길, ‘나의 비밀 숲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담백하면서 여유로운 숲길에서 만나는 아그배나무꽃들은 윤기가 묻어있는 순백이다. 이 윤기가 천상을 향해 휘발하는 것 같다. 잎이 연두색에서 푸른색으로 넘어갈 때 도드라진 아지랑이꽃은 고혹적이며 시원스럽다.

고추나무는 은둔생활을 하면서 철두철미하게 자기관리에 충실한 식물로 다가온다. 고추나무꽃과 붓꽃 자체가 향을 담는 용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누구도 이렇게 고상한 향수병을 창안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고안한 용기에 고유의 향기를 담아 숲속에 뿌리고 있는 것 같다.

천연향료로 많이 쓰이는 꽃으로는 재스민과 장미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 향은 항상 그리워하는 연인관계처럼 어울리는 쌍이다. 재스민의 남성스러운 향기와 장미의 여성스럽고 우아한 향기가 서로 균형을 이룬다. 플로랄계열 향수가 바로 이 조합을 즐겨 이용한다. 샤넬 No.5도 이 두 향료를 기본 골격으로 한다.

아그배나무꽃은 요정이 재스민처럼 남성스러운 향기를 흩날리고 있는 것 같다. 고추나무 향은 장미처럼 여성스럽지만 한복의 치마자락에서 은은하게 다가올 것 같다. 이 두 가지 꽃 향료의 조합을 바탕으로 제주도의 자연을 담은 향수가 태어나면 새로운 계열의 출발이 될 것이다.

아그배나무와 고추나무가 잉태하고 있는 향은 플로랄노트중에 플로랄부케(floral bouquet)1948년에 니나리치에서 발매한 레르뒤땅보다도 더 멋진 천상의 향수로 탄생할 것 같다. 이것은 매혹적이고 유혹적인 낭만의 향수로 현재도 세계 향수 매상 실적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불후의 걸작품이다.

이 향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숨 쉬고 있는 시점에 근심 없는 세상, 꿈과 희망과 행복을 용기에 담고, 두 날개를 가진 새를 형상화한 뚜껑으로 마무리했다. 이 용기에는 호화로운 재스민과 장미꽃의 향기에 가벼운 일랑일랑과 특징이 강한 카네이션의 향이 배합돼 있으며, 이 향은 아름다운 새의 날개를 타고 평화를 향해 날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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