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과 신뢰 사이
오염과 신뢰 사이
  • 제주신보
  • 승인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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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TV에서 흔히 본다. 갠지스강물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 몸만 씻는 게 아니다. 그 강가에서 머리를 감는 사람, 양치를 하는 사람, 심지어는 그런 행위를 하면서 들끓는 사람들 틈에서 그 강물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 눈 뜨고 못 볼 광경이다. 인도인들에게 갠지스강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힌두교도들은 갠지스강이 비슈누신의 발꿈치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라 생각하고 신성시한다는 것이다. 그 물에 목욕하면 한평생 지은 죄가 한꺼번에 다 씻어 내려간다고 굳게 믿는다고 한다.

실은, 인도 갠지스강의 원류는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은 물에서 발원한다. 그 거대한 빙하가 녹아 남쪽으로 내려오다 동쪽으로 휘어 뱅골만으로 유입되면서, 강 길이가 엄청나게 길다. 무려 2460㎞로 압록강의 세 배나 된다.

그런데 이 강물이 힌두교 성지 바라나시에 이르러 심하게 오염된다는 것이다. 성지 근처의 큰 도로변에는 병든 노숙자들이 북적거리고 주변엔 화장터가 80여 개나 몰려 있기 때문이란다.

그 지역 경찰들은 아침마다 주변 노숙자들의 거적을 일일이 들쳐본다. 밤새 숨을 거둔 사람은 시신을 거적과 동냥그릇을 함께 싸서 강가 화장터로 옮겨 놓는다. 화장터는 천민계급인 하리쟌이 관리한다. 그들은 화장을 하는 데 금 긋듯 차별을 둔다. 동냥그릇에 들어 있는 동전만큼만 화목을 땐다. 노숙자가 남겨 둔 돈이 많으면 완전한 화장을 하지만, 동전이 적으면 대충 화장해서 강물에 그냥 냅다 버린다는 것. 온갖 쓰레기로 오염될 대로 오염돼 강물은 그야말로 팍팍하게 된 콩죽이 다 돼 있다.

한데 성지순례를 온 힌두교 교도들은 해뜨기 전에 카트(계단)에 앉아서 그 물을 마시거나 목욕하고 또 마신다. 심지어는 그 물을 가족들에게 먹이기 위해 집으로 길고 간다.

희한한 것은 또 있다. 그럼에도 피부병이나 전염병에 걸렸다는 말은 일절 없다니 놀랍다. 나와 있는 통계도 없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규명이 안되고 의학적으로도 설명이 안된다. 힌두교 교도들은 썩어 오염된 그 강물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갠지스강물에 몸을 씻음으로써 자신이 지은 죄업에서 벗어난다는 무한 신뢰, 오직 그 믿음 말고 다른 아무 생각도 끼어들 여지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지 않는가. 강물에서 행복을 느끼니 그럴 테다. 그게 곧 그들의 진정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종교가 절대한 초인간적 신을 숭배하는 영역이라 인간의 내적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은 말할 것 없지만 놀랄 수밖에 없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갠지스강가에서 벌어지는 힌두교도들의 행위는 그 오묘함이 불가사의한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에게 쏠리는 세계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할 것이고, 전혀 개의치도 않을 것이다.

소망한다. 보편적 삶을 설파하는 한 철인의 한마디 말이 혹은 만인의 가슴 울리는 작가의 글이, 그 향기가 세상 속으로 퍼져 힌두교인들의 종교적 신뢰만큼만 번질 수 있었으면, 그게 진정 따뜻한 위로가 돼 줄 수 있었으면 하고. 그 신뢰가 비단 철학과 문학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삶 속에서 자긍심을 갖게 되기를, 목표는 도달하려는 것, 이왕이면 그게 공동의 목표가 되기를, 목표 지향적 행위를 신뢰하고 그게 모두의 위안이 되기를….

힌두교도들처럼 훌쩍 오염을 넘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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