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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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시인/논설위원

기후가 신선하고 온화한 오월에는 새 생명들이 쑥쑥 자라난다. 사랑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되새기자는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가정의 날 등도 다 오월에 들어있다.

새들의 둥지에도 생명의 드라마는 진행되고, 알에서 부화한 눈도 못 뜬 살덩어리들이 꼬물거리며 속성으로 자란다. 그들이 둥지 밖으로 나오면 부모 새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동물들이 자식을 낳고 길러서 종을 보전하는 기적은 지난한 희생이 그 바탕이다. 사람들은 이를 부모의 도리, 자식의 효도 등으로 정의를 내리며 세대를 이어서 실천해왔다. 그러나 동의 없이 세상에 태어나게 할 권리가 있느냐고 자식이 부모를 추궁하는 경우에는 답이 없다.

살고 싶지 않은 세상에 나를 던져놓고 삶에서 도중하차할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 존재라고 원망하는 자식을 부모는 어디에 호소할 수 있는가. 늙은 모친의 연금이 나오는 날이면 현금지급기 앞에서 기다리면서 빨리 돈을 뽑아 달라고, 낳은 죄를 지었기에 모친은 당연히 고통 받아야 한다고 우기는 자식도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고통을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열두 살로 추정되는 어린이가 낳아준 부모를 고발하는 영화가 있다. 출생기록조차 없는 주인공 소년을 통해 열악한 환경 속에 책임감 없는 부모들이 자녀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자식을 가능한 많이 낳고는 폭력을 휘두르면서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일을 시키며, 딸이 첫 생리를 시작하면 시집보낸다고 돈 있는 남자에게 팔아넘긴다.

영화 배경이 다른 나라라고 해서 우리 사회의 어린이가 모두 축복 속에서 탄생하여 사랑받으며 자라는 것은 아니다. 예닐곱 살만 되면 벌써 집안일을 맡아서 하고, 동생을 돌보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매질하면서 빌라고 강요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2018년 통계에 의하면 아동복지시설에 입소된 아동 약 70%가 학대로 인해 트라우마, 폭력, 자해, 우울, 주의력결핍과 과잉행동장애 등을 보인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예방책으로 외출이나 등교가 제한된 요즘 상황에서 드러나지 않는 가정 내의 비극이 더 심화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자발적 격리와 소외가 권장되니 가정의 생존 능력이 더욱 절실하고, 각 가정을 받쳐주는 정신적 물질적 기반이 약할수록 가족 구성원들의 갈등은 커지고, 무너지는 가정도 점점 늘어날 수 있다.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에서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여 인간 문명은 발전했다. 그러나 부모가 바치는 희생과 봉사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신세대들이 부모 되기를 거부하고, 인간으로 존재하는 자체를 부정하게 되면, 이해와 사랑보다 무관심과 회피, 궤변 등이 세상에 만연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작년에 사용되었던 둥지가 떨어져서 바람에 날아간다. 그 안에서 깨어난 생명체들, 꽃처럼 벌어지던 어린 새들의 노란 부리, 둥지에 저장된 모든 노고가 엮였던 섬세한 풀줄기들과 함께 바람에 부서진다.

사람의 가정도 세월이 흐르면 그 안에 담던 정성과 사랑이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미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부모 역할이나 자식의 본분 등의 의의도 날려서 흩어버릴까, 가정이라는 복잡한 집착과 아픈 사랑의 구조가 점점 나약해져서 사라져 버릴까 가끔 착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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