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여름
농부의 여름
  • 제주일보
  • 승인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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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농업인·수필가)

6월의 감귤원은, 고향 바다처럼 정밀(靜謐)합니다.

싱그러운 햇살이 미풍(微風)과 함께 잎사귀들 위에 살포시 내려앉으면, 갈맷빛 나무들의 바다는 간지럼 타는 아이처럼 키득거리며 넘실거리고, 날아오르는 장끼 울음소리 유성(流星)처럼 긴 꼬리 남기며 아득히 날아갑니다.

햇살 좋은 날을 골라, 농약을 살포했습니다.

적과나 시비(施肥), 제초 등의 일거리가 이어지지만, 무엇보다 여름철 농사의 키워드는 병해충 방제입니다. 아무리 가지마다 어린 열매들이 올망졸망 잘 달려 있어도, 병해충에 노출되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꼼꼼히 예찰(豫察)하고, 제때에 제대로 된 방제를 해 주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등에 짊어지고 손으로 펌핑을 해야 농약이 분사되는 수동식 분무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농약 십여 통 뿌리고 나면 농부들의 등과 어깨가 남아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전기 동력분무기가 상용화되면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드론을 이용하는 농가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감귤하우스에는 무인방제시스템이 설치되어, 전원만 켜면 자동으로 농약이 살포되는 곳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 해 열 번 남짓 해야 하는 농약살포는, 힘도 들지만 사람 몸에 피해를 주는 이른바 ‘3D’작업입니다.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인 ‘PLS’의 시행으로 살포횟수가 제한되고 저독성을 사용하고 있지만, 살충·살균의 독성(毒性)에 사람이라고 해서 안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업 전에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온몸을 가릴 수 있는 비옷과 마스크, 장화를 착용하고, 농약이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고글까지 써야 안전합니다.

불볕더위를 피하기 위해 농약살포는 여명이 걷히는 새벽 6시 정도에 시작하여, 해가 중천에 이르기 전인 오전 내로 마쳐야 합니다. 무리하면 탈진하거나, 농약중독의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부부가 역할을 분담하는데,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나무들에 줄이 감겨 옴짝달싹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분무기 압력 때문에 줄이 터지기도 합니다. 분무기 고장으로 아예 작업이 중단되거나, 멀쩡한 하늘이 심술을 부려, 기껏 살포한 농약이 빗물에 씻겨 나갈 때도 적지 않습니다. 이럴 때 서로를 탓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말들은,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격이 되어, 난데없이 대낮의 부부싸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의 여름날들은, 흙먼지 속에 더운 땀으로 흥건합니다.

그렇지만, 가끔 자리회에 시원한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이 있어서 견딜 만합니다.

통통히 알이 밴 자리로 조리한 물회와 강회는, 농약살포 뒤에 더 맛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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