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의 매력
엇박자의 매력
  • 제주일보
  • 승인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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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일 수필가

퇴직을 하고 나서 얼마 후 난타를 같이 배워 보자는 친구의 권유를 거절했다. 생각해 본적도 없는 분야였고, 사실은 박자에 자신이 없었다. 난타야말로 정확한 박자로 울림을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한번 해보고 도저히 안 되면 그때 포기해도 되지 싶었다.

우리 동호회 난타의 특징은 씽코페이션 리듬이다. 정박자에 이어지는 약박의 음을 끌어당겨서 강박으로 힘을 실어야한다. 정박자에서 오른손 강박을 약박으로 왼손 약박을 강박으로 끌어당겨 변화를 노린다. 낯설게 함으로써 청중들에게 색다름을 추구하는 리듬으로, 엇박자 묘미를 살리고자했다.

엄마가 제일 실수 많이 한 거 아세요?”

난타 리듬을 얼마간 익히고 나서 드디어 첫 무대에 섰던 날. 마을의 작은 도서관에는 아는 얼굴들이 모여들었다. 공연은 시작되었고 집중하여 리듬에 몸을 맡겼다. 맨 앞줄에 앉아 손뼉을 치고 있는 손자와 웃으며 눈 맞춤을 하는 순간, 나는 그만 박자를 놓쳐 이탈자가 되고 말았다. 그 아찔함을 어찌 수습했는지. 무대에서 박자와 리듬으로 흥겨움과 울림을 선물해야하는 난타 연주도 생각처럼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느낀 첫 경험이었다.

작지만 이웃들과 함께 나누자는 생각으로 난타동우회원들과 한 달에 한번 J의료원 정신병동 환우들을 찾아가 생일잔치를 연 지도 8년이 되었다. 생일을 맞이한 환우들을 위해 생일상을 차리고 생일축하 노래를 시작으로 한 시간여 함께 보낸다.

공연은 시낭송으로 시작한다. 난타, 기타, 플루트, 하모니카. 색소폰, 오카리나 연주 및 율동으로 번갈아 공연이 펼쳐지면 무표정, 무반응이던 격리 병동의 회색빛 영혼들이 아픔을 순간이나마 잊고 연주에 빠져드는 모습은 신기하다. 순간이지만 악기들의 울림에 눈동자가 반짝이는 환우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아서, 우리는 한 달에 한번 서로를 기다린다.

난타로 삶의 활력을 얻으며 산지도 아홉 해가 되었다. 그 동안 도서벽지 학교와 주민들 위문, 특수학교, 요양원, 지역사회의 문화 어울림 행사에 북의 울림으로 함께 했다.

싱코페이션 리듬이 엇박자를 살려 평범함을 벗어나 낯섦을 추구하는 방식이라면, 나의 긴 삶의 여정에서 크고 작은 삶의 엇박자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끌어당겨 정열을 쏟았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평범하게 똑같이 되풀이 되는 일상의 무료함을 벗어나려는 발버둥으로 눈을 돌렸던 일들. 40대 후반에 도전한 교원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젊은 선생님들과 만학의 즐거움에 빠졌던 일, 여성 관리직이 전무했던 시절, 여성 관리직에 무모한 도전으로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했던 일들은 어쩌면 내 삶에 엇박자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엇박자가 가져다 준 스트레스와 낯섦이, 내 삶에 가져다준 활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두드웅둥 두드드드!”

북 소리는 순식간에 관객을 빨아 들였다. 서울 코액스 C홀 큰 무대. 나는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미소 띤 얼굴로 관람객을 향하여 연주에 몰입했다. 14명의 연주자들이 생애 최고의 무대를 만들리라는 염원이 통한 듯, 우리는 완벽한 팀워크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한마음으로 흥겨웠던 730초는 내 삶의 귀한 경험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북 앞에서면 늘 설렘으로 가슴이 쿵쿵 뛴다. 북채로 북면을 내리치면, 그 울림이 공명을 일으키며 퍼져나간다. 그 순간 일상에서 올라오는 스트레스, 슬픔, 걱정, 우울, , 질투, 욕망 등에 눌려 있던 삶의 무게가 함께 허공 속으로 흩어져 버린다. 세상에 가득 찬 북 소리의 신나는 리듬에 온몸을 맡기고 무아지경에 빠진다. 나의 생명력이 되살아난다. 나는 그 순간 스무 살 청춘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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