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획이 있었다…자리·한치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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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2009년 개봉된 ‘김씨 표류기’에서 기억나는 것은 짜장면이다.

빚에 쪼들려 한강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 김씨(정재영)는 인근 무인도에서 깨어난다. 이곳에서 생활하던 김씨는 어느 날 스프만 있는 짜장 라면 봉투를 발견한다. 이게 계기가 돼 꿈에서조차 짜장면을 먹는 꿈을 꾸게 된다. 그는 새 배설물을 통해 얻은 옥수수 씨앗을 키우면서 짜장면 먹기 도전에 나선다.

우연히 망원경을 통해 김씨의 행적을 눈여겨보던 은둔형외톨이 여자 김씨(정려원)가 이러한 사정을 알고 10만원을 주며 짜장면 세 그릇을 배달했으나 남자 김씨는 “짜장면은 나의 희망”이라며 배달 짜장면을 거부한다. 그는 결국 옥수수 가루로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데 성공한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짜장면을 스스로 만들어 먹는 게 희망이었던 김씨.

음식은 누군가에게는 어둠속의 희망일지 모른다.

▲‘봄이 간다커늘 술 싣고 전송 가니/ 낙화 쌓인 곳에 간 곳을 모르노니/ 유막(柳幕·버드나무 숲)에 꾀꼬리 이르기를/ 어제 갔다 하더라.’-무명씨(병와가곡집).

그렇게 봄도 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인지 올해 벚꽃은 어떻게 피고 어떻게 졌는지 모를 정도다. 막걸리 한 잔에 벚꽃 한 잎 띄워놓고 웃음 지을 정도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러한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코로나19가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앗아갈 수는 없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음식이다.

영화 ‘김씨 표류기’속 짜장면처럼 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제주는 지금 자리와 한치의 계절이다. 나는 코로나19가 한창인 3~4월 때 어서 빨리 5월이나 6월이 와 자리와 한치를 먹을 계획을 세웠다. 영화 ‘기생충’의 대화처럼 나는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자리물회는 수차례 먹었고, 강회도 한 번 먹으면서 늦봄과 초여름의 선물을 받은 바 있다.

며칠 전에는 활어 한치회를 먹었다. 채소에 한치와 된장, 마늘 조각 등을 싸서 먹으니 한치를 내준 이 계절이 고마운 것이다. ‘현재는 선물이다(The present is a present)’라는 말에 공감한다. 고향 삼양해수욕장 주변에 내 입맛에 맞는 자리와 한치물회를 만드는 식당이 있으니 그것도 좋다. 여름이라고 코로나19의 기세가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거리를 두지 않는 친구와 함께 공간적 거리를 둔 채 자리나 한치물회를 먹고 얘기를 나누며 코로나19의 근심을 잊는 것도 현재의 선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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