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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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온갖 새들이 아침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며 마당에 풀을 뽑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미루었던 것들을 꺼내 정리도 하고 있다. 또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잠시라도 소소한 행복에 젖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런데 꽃보다 먼저 자라나는 잡초가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기에 하나씩 뽑아주던 것이 이제는 아예 판을 깔아 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잡초가 비라도 오고 나면 더욱 기세가 등등해서 이내 잡초밭이 되어버린다. 오늘은 이 구석, 내일은 저 구석에서 자리를 틀고 있는 잡초를 뽑고 있는데 돌아서면 다시 누군가 씨를 뿌려 놓은 것처럼 촘촘하게 올라와 있어서 잡초와의 전쟁은 아마도 이 계절이 지나야 휴전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잡초를 뽑기 전에는 꽃이 보였었는데 잡초를 뽑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꽃보다 잡초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도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천에 있는 풀들이 먼저 보인다. 꽃으로 인해 소소한 행복은 간데없고 꽃밭 속에 감춰진 잡초를 찾아내는 것에만 온통 마음이 가 있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삶이 된다는 글귀를 읽으면서 맞장구를 쳤었는데 내 머릿속에는 어느새 잡초가 차지하고 있었나 보다. 물론 잡초를 제거하고 나면 깨끗이 정리되는 그 맛을 보았기에 자꾸만 잡초에 손이 가는 것이지만 어떻게 꽃이 아닌 잡초가 먼저 보일까. 지금도 마당에 나가면 자동으로 잡초에 손이 간다. 뽑고 돌아서면 또 솟아나 있어 전혀 빈틈을 주지 않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잡초의 생명력이 내 시선을 붙잡고 있다.

내 삶도 돌아보면 꽃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잡초에 얽매인 삶을 살았던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잡초를 제거하는지도 잊어버리고 그저 잡초 뽑는 일만 하다가 어느 순간 꽃이 진 자리를 바라보고 나서야 안타까움으로 몸을 떨었던 기억들이 있다. 돌아갈 수 없으니 다시 회복할 기회가 없고, 그래서 아프다. 특히 아이들이 자랄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지나쳐 버렸다. 나를 봐 달라고 신호를 보낼 때도 바쁘다고 그냥 돌아섰다. 무엇 때문에 바쁜 것이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꽃이 예쁘게 피어나는 것을 보려고 잡초를 제거하는데 꽃은 보지 못하고 잡초만 보는 그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삶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다.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이고, 그리고 붙잡힌 것은 무엇인지 구분하는 순간에 나의 시선이 꽃으로 향하고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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