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룡의 헌 칼
조자룡의 헌 칼
  • 제주일보
  • 승인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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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소설 삼국지에서 상산땅 출신 조자룡은 장판교(長板橋) 전투에서 조조의 백만대군 사이를 비호처럼 누비면서 맹위를 떨쳤다. 삼국지에서 손꼽히는 명장면 중 하나다. 이 싸움에서 자신의 주군인 유비의 아들 아두를 가슴에 품고도 겹겹이 쌓인 포위망을 뚫기 위해 상대를 무수하게 벴다. 자신의 창날이 무디어지면 상대의 검과 창을 빼앗아 사용했다. 이때 그에게 목숨을 잃은 조조 진영의 장수만도 50여 명에 이르렀다.

당시 그가 이 싸움에서 상대의 칼과 창을 제 물건처럼 마구 휘둘렀다 해서 “조자룡의 헌 칼 쓰듯 한다”는 말이 생겼다. 액면 그대로 보면 전쟁터에서 자신의 창과 칼이 없어도 남의 헌 창과 헌 칼로 상대를 제압한다면 대단한 능력자다.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선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이나 권한을 남용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읽힌다.

▲전쟁터에서 흔하디흔한 것은 칼과 창이다. 장수의 것이 아니고 병졸의 것이라면 대개는 신상(新商·신상품)과 거리가 멀다. 더욱이 남으로부터 빼앗은 것이라면 마구 사용하다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다.

물론 남의 것이라도 괜찮다고 판단되면 견물생심(見物生心)을 떨쳐버릴 수 없다. 조자룡 역시 장판교 전투에서 적장 하후은을 거꾸러뜨린 후 그가 지녔던 ‘청강검(靑釭劍)’을 손에 넣었다. 조조가 애지중지하는 두 자루의 보검 중 하나다. 조조는 의천검(倚天劍)은 자기가 차고, 청강검은 하후은이 메고 다니게 했다. 이 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쇠를 마치 진흙처럼 끊어내니, 그 날카로움이 비길 데 없었다. 이를 조자룡은 한눈에 진검임을 알아차리고 허리에 차고 있다가 위기 상황에 이르면 번개같이 꺼내어 상대의 목숨을 노렸다.

조자룡의 헌 칼이란 말이 21대 국회 개원과 맞물려 등장했다.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입을 통해서다. 그는 20대 국회 임기가 종료된 후 지난달 30일 민주당에 탈당계를 냈다. 그 이유가 눈길을 끈다. “편들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오버하지 않기 위해서”란다. 그러면서 민주당에 의미심장한 멘트를 날렸다. “권력을 조자룡이 헌 칼 쓰듯이 쓰면 얼마 못 버틴다”라고. 민심을 잘 살피고 오만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다.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고 했지만 요즘 권력은 인사권에서 나온다. 음주운전 전력자를 행정시장으로 내정한 원희룡 지사의 인사를 놓고 시끌시끌하다. 조자룡의 헌 칼과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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