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와 본 사람처럼
처음 와 본 사람처럼
  • 제주일보
  • 승인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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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진 수필가

지난가을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옆집이 사라졌다. 대문의 틀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 돌구멍 사이로 줄사철나무가 삐져나와 곳곳에 초록 물이 들었던 울담, 실한 알을 품고 있었던 감나무, 담장 위로 고개 내밀어 골목길을 내려다보던 엔젤트럼펫 꽃들, 모두 온데간데없다. 휑한 곳에 바람만이 황당한 듯 서성이고 있었다.

언제였던가, 어떤 분이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머물고 있는 동네의 오래된 것부터 사진 찍어 남겨 두는 것도 나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흘려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수년이 지나도 거의 변화가 없는, 낮은 지붕들이 고만고만하게 하늘을 이고 있는 동네라 설마했었다. 한데 주위를 뒤척이니 멈춰 있는 듯 보여도 멈춰 있는 게 아니었다.

오가며 눈길을 끌던 작은 모퉁이의 텃밭들은 콘크리트 건물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들이 끌고 다니던 유모차엔 이웃끼리 나눠 먹던 푸성귀가 없어진 지 꽤 되었다. 하나밖에 없던 동네 슈퍼가 24시 편의점에 밀려 간판을 내렸고, 한길에 있던 이발소도 여행객을 위한 유모차와 카시트 대여점으로 바뀌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삼색표시등 자리엔 유아용 카시트가 건조하게 걸려 있다.

관심을 두지 않은 사이, 카페의 예쁜 커피 잔이나 잘 차려진 음식들에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이, 하나 둘 시나브로 사라졌다. 변화의 흐름은 고양이의 걸음처럼 슬며시 다가와 있었다.

『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우리 동네에서 흥미 있는 것은 모두 발견했다 자신한다고 한다. 그곳에 오래 살았다는 게 주된 이유에서다. 우리가 십 년 이상 산 곳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어 그것이 습관화되어 있고, 따라서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다. 그 습관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이곳에 처음 와 본 사람처럼 사물을 바라보라 권한다. 전과 전혀 다른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며.

낡고 칙칙함이 싫은 때가 있었다. 높게 솟은 건물들의 쨍하게 눈부신, 새것의 말끔함을 동경했다. 그러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건물들 틈에서 버티고 서 있는 빛바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나 좀 봐 달라는 눈빛이었다.

대견함과 아릿함. 세월의 풍파를 이겨 내며 거목처럼 견디고 있는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 왔다. 순간 나의 손을 보며 자신의 손을 쑥스러워하시던 어머니가 스쳤다. 손에 거죽만 남았다며 한숨을 뱉던 어머니.

시간의 더께로 만들어진 흔적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이른 새벽 대문 밖에서 만난 전깃줄에 걸린 달과 고층 빌딩 위에 뜬 달을 비교하며 우위를 매기던 나, 그 찰나가 부끄러운 것이거늘.

부끄러움에, 관심의 틀에 맞췄던 고정관념을 버리고 낯선 눈으로 동네를 걷는다. 그저 지나치기만 했던 고인돌 앞에 섰다. 마치 거북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아주 긴 시간만큼이나 이야기를 품고 있을, 누군가의 삶이 머문 자리. 그 앞을 지나간 숱한 발자국을 묵묵히 지켜본 그 침묵을 카메라에 담는다. 소소한 여행의 시작이다.

여행은 목적지가 아닌 심리에 더 좌우될 수 있다고 했다. 섬 밖으로의 여행이 주저되는 요즘, 작고 사소한 것에 감탄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살고 있는 동네를 둘러보자. 처음 와 본 사람처럼. 아름다움은 늘 가까이에 있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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