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항소심서 보육교사 살인 피고인에 무기징역 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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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미세섬유 증거 안돼" 무죄 주장...피고인 "2년간 재판으로 내 삶은 엉망진창"
2009년 2월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경찰이 감식을 벌이고 있다.
2009년 2월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경찰이 감식을 벌이고 있다.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검찰이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10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박씨(51)에 대한 결심공판을 진행한 가운데 검찰은 1심과 마찬가지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해자 이모씨(사망당시 27세·여)가 사망 당시 입고 있었던 무스탕에서 무작위로 15군데에서 ‘동물털’(동물섬유)을 채취해 구조와 유형을 분석한 결과, 택시 내에서 발견된 2점의 동물털과 유사해 범행 당일 두 사람이 접촉한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미세섬유(동물털) 분석이 DNA처럼 동일성은 인정되지는 않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반면, 변호인은 미세섬유 분석 결과로만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과 동일하다는 증거라고 볼 수 없고, 당시 무스탕 착용이 유행해 제3자가 입었던 무스탕의 동물털과 비교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며 반박했다.

박씨는 최후 진술에서 “2년 동안 재판을 받으면서 제 인생은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제 결백을 증명할 기억이 온전치 않아서 너무 답답하지만 하루속히 사건이 해결돼 피해자 가족이나 제 마음 속의 억울한 심정이 풀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 항소심 선고일은 7월 8일 오전 10시다.

▲동물털 유사성과 동일성 쟁점

이번 항소심에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박씨가 운행했던 택시에서 나온 무스탕 동물털(미세섬유)이 서로 같은 종류의 것일 수는 있지만, 피해자의 것과 ‘똑같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동일성을 놓고 쟁점이 됐다.

이는 면섬유와 동물섬유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판매돼 피해자 외에 다른 승객 등 제3자의 옷에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과거 택시 좌석과 트렁크에서 발견된 동물털과 면셔츠 미세섬유를 확보해 피해자의 무스탕에서 유사한 섬유를 채취해 비교·분석했다.

이번에는 피해자의 무스탕 15군데에서 무작위로 털을 뽑아 유전자 감정과 법화학 감정을 실시한 결과, 택시에서 나온 2점의 동물털과 구조와 유형에서 유사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따라 박씨의 유·무죄를 결정할 가장 큰 관건은 피해자의 옷에서 나온 미세섬유 증거와 피고인 차량에서 나온 동물털의 동일성 인정 여부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신체와 피고인의 옷에서 발견되지 않은 다른 다양한 섬유들이 검출된 점 등에 비춰 피고인이 피해자뿐만 아니라 해당 섬유의 옷을 입은 제3의 인물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즉, 수사기관이 제출한 미세섬유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항소심 재판에서 미세섬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맞섰다. 검찰은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 등 동물털에 대한 증거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과수에서 재감정을 받은 점을 강조했다.

이에 변호인은 미세섬유를 포함해 검찰이 제출한 피고인의 이동동선에 따른 CCTV 영상물 분석 기록도 검찰의 추정에 불과하다며 증명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주장했다.

▲장기 미제 사건이 된 ‘제주판 살인의 추억’

장기 미제 사건이 된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사건은 11년 전인 2009년 2월 1일 발생했다.

새벽시간에 집에 간다며 남자친구와 헤어진 보육교사 A씨(사망 당시 27세·여)가 갑자기 실종됐다. A씨는 실종 7일 만인 2월 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농로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성폭행 시도 흔적과 목이 졸린 시신으로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떠올랐다.

이씨는 평소 늦은 귀가 시 택시를 타고 애월읍 집으로 갔다. 그런데 실종 신고 일주일 만에 집에서 4㎞ 떨어진 배수로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11년 전 제주에서 대리운전은 거의 드물었고, 심야시간에 유일한 이동수단은 택시인 점을 감안, 당시 5000여 명의 전 택시기사를 용의 선상에 올랐다.

통신수사와 택시 운행기록계 이동 거리를 확인한 결과, 경찰은 10여 대의 택시로 수사 범위를 좁혔다.

1곳을 제외한 나머지 3곳의 CCTV 영상은 흐릿했지만 2009년 당시 도내 회사택시 중 외부 천장에 노란색 캡등이 달린 흰색 중형택시는 18대에 불과해 용의자를 10여 명으로 압축했다.

경찰은 박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벌였으며 택시 좌석과 트렁크에서 여러 개의 섬유조직을 발견했다.

피해자의 신체 5군데와 치마와 가방에서도 실오라기와 같은 섬유조직을 확보했으나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것과 동일하다는 증거력이 부족하고, 증거물 압수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아 수집된 미세섬유를 증거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피해자 사체의 장기 부패가 전혀 진행되지 않은 점, 겨울인데도 사체의 온도가 현장 주변 기온보다 높다는 점 등을 이유로 당시 부검의가 사망 시각을 사체 발견 시점에서 24시간 이내로 추정했다. 이는 수사기관이 살해된 후 일주일만에 발견된 사체의 사망시간을 놓고 논란이 됐다.

경찰은 2018년 돼지를 이용한 사체실험으로 피해자 사망 추정시각을 뒤집어 박씨를 법정에 세웠다.

택시에서 지문과 혈흔 등 직접 증거가 나오지 않은 이번 사건에서 10년 전에는 미미했던 ‘미세 증거물’ 증폭 기술로 섬유조각(실오라기)까지 분석하는 과학수사 기법을 통한 증거력에 대해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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