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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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 천주교제주교구 동광성당 주임신부/논설위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혼자 방에서 지내는 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요즘 들어 저는 사제관에 큰 화분 세 개와 작은 꽃 화분 몇 개를 사다 키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중에 ‘알로카시아’란 나무에 유독 눈길이 갑니다. 원래 그 나무는 잎사귀들이 넓게 퍼져서 자라는데, 그 모습이 코끼리귀와 너무도 흡사합니다.

처음에 반양지식물이라고 해서 햇빛이 잘 안드는 거실에 갖다 두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분무기로 물을 골고루 분사해주고 잎사귀를 하나씩 정성껏 닦아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시간이 갈수록 잎사귀들이 말아지면서 윤기를 잃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햇빛이 제법 잘 들고 그늘도 지는 곳에 옮겨놓았습니다. 그러자 며칠이 되지 않아 잎사귀들은 하나같이 햇빛이 비추는 쪽으로 향하더니 짙은 초록색을 띕니다.

또한 아래로 말리면서 말라가던 잎사귀들이 넓고 편편하게 펴지며 윤기마저 납니다. 이처럼 생의 끝자락을 향하던 잎사귀들이 햇빛 쪽으로 방향을 틀자 풍성하고 생기있게 다시 살아납니다.

이런 자연의 섭리는 삶의 반면교사입니다. 우리도 삶의 방향을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 삶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자기 눈앞의 이익과 욕심에 갇혀 살면 안됩니다. 영혼이 갈수록 메마르고 피폐해집니다. 타인의 자유와 행복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남의 천부인권도 망각합니다. 심지어 폭력으로 억압하려듭니다.

지난 3주 전, 미국의 한 흑인 중년 남성이 비무장과 비저항 상태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납니다.

그러자 트럼프대통령은 자국민의 시위대를 되레 타자화(化)해서 폭도로 몰아세웁니다. 심지어 군대까지 동원해서 강제로 진압하겠다고 호언합니다. 괴로워 슬피우는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할망정, 자기기만과 탐욕에 사로잡혀 안타깝게도 ‘사람다움’을 잃어갑니다.

이에 우리는 늘 이웃을 자기화(化)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존재가치마저 높아집니다. 서로 훈훈하게 상생하며, 영혼 깊은 곳까지 기쁨과 행복이 피어납니다.

금번 코로나19로 우리나라는 전례없는 위기상황을 맞습니다. 매번 그렇듯 이번에도 십시일반 서로의 마음과 힘을 모읍니다. 여기저기서 많은 의료진들이 불구덩이 같은 현장에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 봉사합니다. 또한 어려운 소상공인들을 위해 상가임대료를 깎아주는 ‘착한 임대료운동’이 일어납니다.

무엇보다 너나 할 것 없이 생활속 거리두기를 지키며 불편함을 감수합니다.

이로써 전 세계의 입국 기피대상국에서 이젠 세계 표준이 된 ‘K방역’에 걸맞은 방역선진국으로 우뚝 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급적 ‘나’를 넘어 ‘너’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미학에 정향(正向)해 삽시다. 사람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로서만 측정할 수 있다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본래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손을 내밀도록 합시다.

이때 우리 존재의 가치는 높아지고 이 사회는 누구나 살맛나는 아름다운 터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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