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거리두기
지구와 거리두기
  • 제주일보
  • 승인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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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춘강장애인근로센터 사무국장·수필가

샛노란 물결이 출렁인다. 온 마당을 누비는 병아리처럼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보이던 개민들레가 도로변에 가득하다. 왕복 4차선 도로가 온통 노랗게 물들었다. 달리는 차의 창을 열어 한참을 넋 놓고 볼만큼 긴 물결이다. 오롯이 자연이 피워낸 장관이다.

노랑뿐인가 보라, 하양, 빨강 저마다의 색채가 초록과 어울려 하늘거리고 있다. 낯선 풍경이 정답게 느껴짐은 나이 탓인가? 어릴 적 소풍 가는 길은 어디나 이랬다. 신작로 돌 틈 사이엔 계절을 따라 작은 꽃들이 얼굴을 내밀었고, 오름 들녘에는 야생화가 만발했다. 빨간 보리탈을 주워 먹고 하얀 삥이를 뽑아 질겅질겅 씹다 보면 원보 대열은 수시로 흩어져 번번이 선생님께 혼나곤 했다.

우리의 살림이 나아져서인가? 언제부턴가 도로변이 깨끗이 정돈되어 갔다. 깔끔히 잡초가 베어진 길에는 꽃이 심어졌다. 계절을 따라 공무원의 계획과 현장에서의 노고가 더해져 제철 꽃이 피어났다. 매해 같은 꽃들이 잠시 머물다가는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도로변 잡초관리가 이뤄지지 못하였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고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두다 보니 자연스레 자연과도 거리가 생긴 것이다. 잡초여서, 혹은 돌보지 않아도 피는 들꽃이라는 이유로 늘 뽑아낼 대상이 되었던 것들이 맘껏 자라나 군락을 이뤘다.

무성히 자라난 저들을 보며 부모의 양육방식을 떠올린다. 아기는 태어나 오롯이 부모의 손길에 의지하여 자란다. 행여나 하는 걱정으로 초등학교에 가서도 모든 것을 해결해주려 하는 부모는 소년이 자라 청년이 된 후에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돌보려 한다. 우리는 이를 지나친 간섭이라 하고 집착이라 부른다. 그리고 자녀들의 인생에 악영향을 미치는 돌봄임을 너무도 잘 안다.

그렇다면 지구는 어떠한가? 80년대 도로변 정화 활동으로 화단을 만들고 꽃을 심으며 뿌듯해하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는 아름다운 강산을 만들기 위하여 물길을 만들고, 꽃이 피어야 할 자리를 정하고, 심지어 산과 강을 옮기기도 한다. 정부는 국토를, 개인은 마당을 다스리려 애써왔다. 나의 땅이기에 더 좋은 모양으로 가꾸는 것이라고, 인간이 지구를 다스리는 것은 의무라고 주장해 왔다.

지구를 다스리는 수고에 대한 대가는 어떠한가?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 종말 주장이 이제는 피부에 와 닿는 실정이다. 물은 사서 마시고, 미세먼지로 호흡하기도 어렵고, 하늘의 별도 사라졌다. 이제 우리는 마스크를 끼고 꽃구경에 나서고 별을 보기 위하여 멀리 떠나야 하며, 깨끗한 물을 위하여 정수필터라는 쓰레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돌봄이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지구 스스로 치유할 능력을 짓밟아 버린 것은 아닐까?

코로나19로 인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줄어든 곳에서 자연이 살아나고 있다. 대기질이 개선되며 하늘이 나타났고, 수질이 맑아지자 물고기들이 모여들었다. 그 어느 환경학자의 이론적 근거보다도 확실한 증거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람 사이 거리두기를 넘어 지구와도 거리두기를 하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바이러스 전파를 막아주듯이 지구와의 거리두기는 인간으로 인하여 파괴되는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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