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나무 없는 비자림로
비자나무 없는 비자림로
  • 제주일보
  • 승인 2020.06.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상학, 제주대학교 지리교육전공 교수·박물관장/논설위원

제주도는 2018년 8월 초 비자림로의 확장공사를 시작하면서 도로가에 있던 삼나무를 벌목했다. 벌목의 현장이 언론에 의해 보도되면서 비자림로는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삼나무의 푸른 숲과 나무가 잘려나간 자리의 황토색 흙이 강렬한 대조를 이루는 사진은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하면서 환경 훼손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었다. 여기에는 비자림로라는 도로 이름도 한몫 거들었다.

비자림로! 이름만 들으면 울창한 비자림을 통과하거나 최소한 비자나무 가로수가 빽빽한 도로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비자림로에는 비자나무를 전혀 볼 수 없다. 제주특별자치도 지방도 1112호로 지정된 비자림로는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평대초등학교 앞 교차로에서 봉개동 5·16도로 교차로까지 총연장 27.3㎞이다. 비자림로의 평대에서 송당 구간은 기존에 사용하던 도로였고 5·16도로에서 교래리 구간은 1967년 목장 지대를 개발할 목적으로 새롭게 개설된 것이다. 1970년대 도로를 포장하고 1979년에 당초 평대~송당선에서 평대~5·16도로까지를 ‘동부축산관광도로’로 개칭하고 지방도로 지정하였다. 이후 1990년에 ‘동부축산관광도로’에서 ‘비자림로’로 변경 제정했다. 공고에는 명칭이 다양하여 도민 및 외래 관광객의 혼동 우려가 많아 변경했다고 하는데 비자림로의 경우는 혼동 우려가 없음에도 변경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로의 명칭을 동부축산관광도로에서 비자림로로 변경한 연유는 무엇일까? 당시 같이 변경된 도로 가운데 한림에서 창천으로 이어지는 서부축산관광도로가 있는데, ‘한창로’로 변경되었다. 아마도 두 도로의 명칭이 길어 부르기에 불편해서 변경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창로’의 예를 따르면 평대에서 봉개 구간이기 때문에 ‘평봉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도로의 인근에 비자림이 있어서 ‘비자림로’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대에서 출발할 때 ‘비자림로’라는 명칭이 낯설지 않지만 5·16도로에서 진입할 때 ‘비자림로’라는 명칭은 혼란스럽다. 비자림은 평대에서 가까운 곳에 있지만 봉개에서 길을 따라 가면 도로의 전체 연장 27㎞ 가운데 20㎞를 가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샤려니로’, ‘산굼부리로’가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현행 도로명주소법 시행령 제7조 1항에 도로의 이름을 부여할 때는 지역적 특성, 역사성, 위치 예측성, 영속성, 지명과 지역주민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비자림로의 경우 지역성이나 위치 예측성 등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자림이라는 한 장소의 지명이 27㎞에 걸쳐있는 지역의 도로 이름으로 적절한 지는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치적 목적으로 도로명이 변경되는 경우도 있었다. 제주도는 2006년 9월 22일 국도95호선인 서부관광도로를 ‘평화로’로, 국지원지방도 97호선인 동부관광도로를 ‘번영로’로 변경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성공적 출범과 제주국제자유도시 건설에 따른 이미지 개선을 목적으로 변경했다고 하는데 지역성과 전혀 무관한 평화와 번영이라는 보통명사를 도로 이름에 사용함으로써 족보 없는 도로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과거 제주의 간선도로로 ‘웃한질(上大路)’이라 불리던 지역성과 역사성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평화와 번영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할 수 있지만 제주 땅의 도로는 시간과 장소 속에서 새겨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경문 2020-06-17 23:17:05
가장 지역적인 것도 세계적일 수 있습니다. 정체성을 하나씩 탈피하고 경시하다보면 이 땅은 만신창이로 전락 결국 홍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