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까운 것들
저 아까운 것들
  • 제주일보
  • 승인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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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수필가·시인

아내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마늘을 손질하고 있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잘 말려야 한다며. 알이 예년보다 더 작다. 거름을 많이 사용하고 농약도 뿌려줘야 하건만, 우리 텃밭 식구들은 땅심만 믿고 자란다. 전문 농업인처럼 잘 돌봐주지 못해 농산물 수확 때가 되면 늘 미안한 마음도 함께 자루에 담았다. 하지만 어쩌랴, 주인을 잘못 만난 것도 제 팔자다.

마늘 전용 비료를 뿌리면 그 냄새가 고약하여 한 번도 그걸 써 보지 않았다. 농약도 여덟 번을 뿌려야 한다는데 유산균으로 만든 친환경제제만 뿌렸을 뿐이다. 비루먹은 망아지처럼 허리가 가느다란 마늘 대가 눈에 밟힌다.

텃밭 주변을 둘러보면 길 건너 너른 앞밭도 전문 농업인이 하는 마늘밭이고, 큼지막한 뒷밭도 해마다 마늘을 심었다. 마늘 농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소득이 보장되는 작물이었다. 노동집약적이고 씨 마늘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마늘이 6쪽이라 수확하면 20%는 씨 마늘로 저장, 관리해야 한다. 아무나 쉽게 하지 못하는 농사다. 중국산 마늘이 수입되면서 가격이 해마다 하락해 왔다. 올해는 최악의 수매가격 산정으로 마늘 농가 시름이 더 깊다.

하지만 우리 눈엔 예년보다 더 튼실하게 자란 것 같은 녀석들이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우리 마늘과는 알 굵기가 배 이상 차이를 보인다. 가격을 떠나 귀한 존재로 보여 부러웠다.

수확을 앞두고 앞밭에 제초제를 뿌렸다는 푯말을 박아 세운다. 궁금해 물어보니 과잉 파종되어 폐기하면 국가에서 보상금을 준다고 한다. 황갈색으로 타들어 가는 마늘을 바라보며 아내는 저 아까운 목숨을 어쩌나 속께나 태웠다.

다음날은 뒷밭에서 예초기 소리가 우렁우렁 들리더니 마늘 지상부를 파쇄하고 트랙터로 갈아엎었다. 수확을 앞둔 여린 풋마늘 머리가 잘리고 동강 나 흙 위에서 뒹굴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가슴은 마늘의 알리신(alliinase)을 먹은 만큼이나 아렸다. 길 가던 사람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은근히 화가 난다. 수확하고 저장한다거나 가공이나 수출을 하면 안되는 걸까, 비싼 씨 마늘을 공들여 준비하고 밭갈이와 비닐을 덮고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하나하나 심고 가꾼 저 귀한 것을….

우리 선조님들은 전문으로 농사를 지은 것이나 텃밭에 심은 부추 한 이파리도 소홀하지 않았다. 생명을 아끼는 마음, 떨어진 이삭 하나라도 귀하게 생각하는 게 농부가 가져야 할 기본임을 보고 배우며 자랐다.

나라에서 보상해 준다고 해서 저렇게 약을 먹여 죽이고, 날카로운 칼날로 잘라버리고, 트랙터로 동강 내 버리다니. 그런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 게 옳은 것인지 답답하다.

정책이 문제다. 해마다 농업경영체 조사를 한다. 파종 전에 경작지에 무얼 재배할 건지 파악하고 있다. 귀찮을 정도로 전화로 묻거나 적어서 보내라는 우편물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방문조사도 한다. 그 조사는 인력 낭비만 했던 것인가, 조사했으면 파종부터 관리가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는가. 자본을 투입하며 힘들여 지은 농산물을 보상금 줘 가며 폐기처분하는 건 나라 곳간을 비우는 일이다.

마트를 갔더니 마늘 값이 예년보다 값은 내렸지만 사는 사람 입장에선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흙 위에서 뒹굴던 동강 난 마늘 머리가 아깝다는 생각이 또 가슴을 후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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