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물처럼
  • 제주일보
  • 승인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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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물은 흐른다. 개울물로 강물로 흐른다. 흘러서, 흐르므로 모나지 않고 각지지도 않다. 그래서 둥글다. 원만하다.

어제오늘 아니다. 흐르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재잘재잘 작은 개울물이 어깨 겯고 흐름에 잇닿아 콸콸 큰 흐름을 이룬다.

억만년을 한 식솔로 흐른 인연들. 스미고 감돌고 굽이치며 한데 흐른다. 갈가리 찢겨 몸을 부수기도 한다. 흘러온 역정의 최후는 하얗게 흩어져 장렬하다. 그러나 일어나 다시 흐른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쉬지 않고 흐른다.

물은 무심한 듯 흐르며 생명을 품는다. 목마름을 축여 주는 시선(施善), 물의 이타행은, 나고 자라 융성하게 하는 원천이다. 제주의 마을이 섬을 돌아가며 옹기종기 해변에 모여 있는 건 필연이다. 한라산에서 가파르게 내린 물이 뭍의 끝, 바닷가에 이르러 솟는다. 물은 생명수이고 대지의 젖줄이다.

존재의 세계를 압축하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더 간략하면 하나이다. ‘水’ 곧 물. 우주에 올라 탐색을 거듭했지만 태양계의 행성엔 물이 없다. 한 모금 물이 없어 목마른 별들뿐이다. 물이 없는 곳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지(死地), 죽음의 세계다. 생명이 없다. 물이 있어 풀이 나고 나무가 우거지고 꽃이 피고 새가 날고 짐승이 포효한다. 물은 단순한 식수가 아니다. 존재 자체다. 외경해야 하는 이유다.

물소리에 귀 대어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조잘조잘, 졸졸, 철철, 으르렁 콸콸, 크고 작은 소리들이 신나게 변주한다. 번성하는 생명의 천연덕스러운 육성에 귀를 닫지 못한다. 원시를 복사하거나 재탕한 게 아니다. 그대로 시원의 알짜배기다. 그것은 애초의 것으로 근본이면서 원천이다. 원래 문명 이전의 음색, 소리의 결은 얼마나 풋풋한가. 사람 사는 처처에 저런 소리로 가득 채워 흐르면 좋을 것인데, 신명날 것인데….

물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노라면, 2500년 전의 말씀으로 되살아난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이른 ‘상선약수(上善若水)’란 말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에 더할 경전이 없다. 물은 인간을 흐름으로 일깨우는 텍스트다. 밤낮없이 깨어 있다. 365일 어느 하루 잠들지 않고 깨어 있다.

물은 포용한다. 작은 물줄기들이 제 길을 내며 흘러 큰물에 닿는 순간 합류한다. 서로 부둥켜안는 커다란 포용의 실체가 눈앞을 흐르고 있는 건 신비롭다. 그들은 강물이 되고 바다로 나아가는 동행자다. 물은 본래 그대로 몸을 한없이 낮춘다. 처음, 흐르기 시작하던 날의 초심을 잃지 않는 물은 바닥을 하심(下心)으로 흐르며, 끝내 원류를 만나 마음이 강 한가운데 하심(河心)에 닿아 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됐다. 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일방적인 강경 대응이었다. 그게 어떤 시설인가. 남북 간 교류 협력을 통한 통일 지향의 상징이었지 않은가 말이다. 2018년에 개설해 남북 간 교류, 당국 간 회담과 협의, 민간교류를 담당해 왔는데,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남북이 다시 혼미에 빠지면서 시계 제로의 초긴장 상태로 치닫는다. 왜 이러는가 묻고 싶다. 가슴 뛰던 도보다리 산책은 한낱 환상이었나. 작은 물줄기는 흘러 바다가 되는데, 사람들은 왜 이러는가. 흘러야 모나지 않고 각지지 않아 둥글고 원만한 것을. 우리도 흘렀으면, 물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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