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으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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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종, 서귀포지사장 겸 논설위원

오늘(25일)은 6·25 전쟁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한다.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북의 긴장 국면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6·25를 되돌아보고 기억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은 암호명 ‘폭풍 224’라는 작전 계획에 따라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남한을 침공했다.

3일 만에 서울을 함락시킨 북한군은 남침 두 달 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국군을 몰아붙였다.

유엔군 참전 후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으로 서울을 탈환한 유엔군과 국군은 그해 10월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했으나 중공(중국)군의 개입으로 다시 서울 이남까지 밀려나게 된다. 그 후 전선은 엎치락뒤치락했고 1953년 7월 27일 정전(停戰)협정으로 현재의 휴전선이라는 군사분계선이 생겨나게 됐다.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엄청났다.

국가기록원 통계에 따르면 남한은 군인 사망 13만7000여 명, 부상 45만여 명, 실종 및 포로 3만여 명, 민간인은 사망 37만여 명, 부상 22만여 명, 실종 및 납치 38만여 명 등 총 160만여 명이 인명 피해를 당했다.

북한은 군인 사망 52만여 명, 부상 22만여 명, 실종 9만여 명, 민간인은 사망 40만여 명, 부상 160만여 명, 실종 68만여 명으로 총 350만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유엔군은 사망 4만여 명, 부상 10만여 명, 실종 및 포로 9000여 명 등 총 15만여 명, 중국군은 사망 14만여 명, 부상 79만여 명, 실종 및 포로 2만여 명 등 총 97만여 명이 인명 피해를 입었다. 국토가 폐허가 되다시피 하면서 사회적·경제적 손실도 막대했다.

▲6·25 전쟁 때 단일 전쟁으로 가장 많은 67개국이 직·간접적으로 남한을 지원했다.

미국·영국·프랑스·터키 등 16개국이 전투 병력을, 스웨덴·노르웨이 등 6개국은 의료진을 파견했으며 나머지 국가들은 물자와 수송, 전후 복구를 지원했다.

국군 6·25 참전용사는 물론 이름도 모르는 낯선 나라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유엔 참전용사들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며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떠올려 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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