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주민들의 뜻을 품고 포화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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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철씨 6.25참전한 부친 유품 발견...무운장구 기원하는 태극기 '눈길'
박원철씨가 6·25전쟁 당시 아버지가 가슴에 품고 담았던 태극기를 보여주고 있다. 고향 주민들은 그의 명운을 빌며 태극기 곳곳에 이름과 글을 써 놓았다.
박원철씨가 6·25전쟁 당시 아버지가 가슴에 품고 담았던 태극기를 보여주고 있다. 고향 주민들은 그의 명운을 빌며 태극기 곳곳에 이름과 글을 써 놓았다.

“아버지의 유품을 통해 6·25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전투를 치른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알게됐습니다.”

2016년 서기관으로 명퇴한 박원철씨(62)는 6·25전쟁 70주년을 앞두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광목천에 그려진 태극기글 발견했다. 그의 부친은 고(故) 박성인씨(1930~2001)로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스무 살에 육군으로 참전했다.

출정을 앞둔 그를 위해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 고향 주민들은 태극기 곳곳에 이름을 적고, 명운을 기원했다. ‘구국의 정신’, ‘필승’ 등 문구와 함께 조국 수호에 나선 무인(武人)이 살아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무운장구(武運長久)의 글도 적어놓았다.

고향 주민들의 성원에 3군단 소속 전령으로 배치된 그는 6·25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제대해 고향 땅을 밟게 됐다.

3군단은 1951년 5월 중공군 2차 춘계 공세 때 강원 인제 현리지구 전투에서 병력의 60%를 잃을 정도로 희생이 컸다. 방어선에서 70㎞나 후퇴를 한 3군단은 창설 8개월 만에 해체됐다.

박원철씨는 “아버지는 기밀문서를 전달하는 전령을 맡았다”며 “마을 주민들이 무운장구를 빌며 전해준 태극기 덕분에 부친은 치열한 전장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친의 유품에는 앳된 얼굴에 속칭 ‘몸빼’ 군복 바지를 입은 제주출신 여군들의 모습과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3군단을 방문, 격려하는 장면이 담긴 귀중한 흑백사진도 있었다.

박씨는 “부친이 간직했던 태극기에는 ‘백두산 정상봉에 태극기를 휘날려 달라’는 글귀도 있다”며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평화와 통일의 염원이 담긴 태극기를 잘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제주 출신 6·25전쟁 참전자는 약 1만3000명이다. 4·3의 광풍이 끝나자마자 많은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출정했다. 하지만 4000여 명은 직계가족이 없거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서 참전유공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제주시 신산공원에 있는 6·25참전 기념탑에는 899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군종 별로는 육군 5972명, 해병 2308명, 여(女) 해병 111명, 해군 91명, 공군 19명, 경찰 494명, 학도의용군 1명, 노무자 2명 등이다. 전사자는 육군 1516명, 해병 375명, 해군 16명, 공군 2명, 경찰 150명, 노무자 2명 등 모두 2061명이다.

故 박성인씨 사진첩에서 나온 제주출신 여군들. 앳된 모습에 몸빼 바지 형태의 군복을 입은 모습이 이채롭다.
故 박성인씨 사진첩에서 나온 제주출신 여군들. 앳된 모습에 몸빼 바지 형태의 군복을 입은 모습이 이채롭다.
故 박성인씨 사진첩 중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3군단을 방문한 장면을 찍은 사진.
故 박성인씨 사진첩 중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3군단을 방문한 장면을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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