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과 파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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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요즘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서 인터넷을 통해 오래된 영화를 볼 때가 있었다.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티파니에서 아침을’ 그리고 ‘My Fair Lady’를 보았는데, 요즘 영화와 비교하면 상당히 고전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오드리 헵번이 인생 말년에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영화 대부분에서 그가 영화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이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다른 남자 주인공이 함께 나왔다 해도 영화를 실제로 지배했던 주인공은 그 한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오드리 헵번은 시대를 지배했던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는 평생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우파 파시스트 운동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앞세우며 독재정치를 추구했던 사람이 파시스트이다. 노동자 농민을 앞세웠던 모택동이 좌파의 파시스트라면, 국가와 민족을 강조했던 히틀러나 무솔리니는 우파의 파시스트가 되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역이 바로 그 우파의 파시스트들이었다. 그러니까 오드리 헵번 시대의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파 파시스트라는 이름은 듣기가 거북한 끔찍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오드리 헵번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파나 좌파나 파시스트 독재자들에게는 이런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은 국가와 사회의 위기에 나타나서 혁명적 변화를 외치는 것이다. 어두운 현실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백성은 선동적인 주장과 힘있는 연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떻게든 빨리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파시스트 선동가들은 짧은 시간 동안에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당장이라도 밝은 미래를 열어갈 듯이 외쳐댄다. 국가 사회적 위기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장에 처리할 혁명적 과제가 있다고 외친다. 그 혁명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부류의 인간을 증오하며 외칠 때 그들은 얼마든지 하나가 되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증오하고 외치다 보면 이제 곧 밝은 미래가 오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선동과 증오의 함성과 함께 그들은 어느덧 절망과 파국의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결국 광기어린 학살의 주인공들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우파의 파시스트나 좌파의 파시스트나 처음에는 그럴듯한 미래와 변화를 외쳐대지만, 어느만큼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주로 증오하고 외치는 일만 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파시스트 리더들은 점점 더 강력한 독재자가 되어가는 것이요 증오와 선동에 이끌린 백성은 집단적인 범죄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모택동 같은 사람도 처음에는 중국의 새로운 미래와 변화를 외치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미래는 어두워졌고 그들의 현실에는 내적 진실을 멀리하려고 애쓰는 독재의 타성만 남게 된 듯하다. 그런 증오, 그런 함성, 그런 독재가 살아움직이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는 것은 무척이나 힘겨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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