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서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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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자연의 숲에는 그들만의 원칙이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가지를 뻗을 때, 그 옆의 가지도 잘 뻗을 수 있도록 틈을 준다. 또한 상층의 나뭇잎들은 하층에서 자라는 나뭇잎들에게 햇빛과 바람이 잘 들도록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해안에 키 100m인 레드우드라는 미국 삼나무가 있다. 암석층 위에 몸을 놓다 보니 뿌리를 3m 정도밖에 내리지 못한다. 그럼 3m의 얕은 뿌리로 어떻게 100m의 높고 거대한 덩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레드우드는 자신의 뿌리를 옆으로 길게 뻗어, 곁에 있는 다른 뿌리와 서로 얽히고설켰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서로 한 몸처럼 부둥켜안고 버텨내 세계에서 가장 우람한 나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개체를 해치려 들지 않고 더불어 살고자 하는 자연의 섭리.

코로나19가 여전히 물러날 낌새가 아니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이 상황이 어서 빨리 안정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요즘 같은 시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이 있다면, ‘1m 거리두기를 지키자’는 것. 마스크 착용, 손 소독, 열 체크도 중요하지만 공간 확보가 최우선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어떤 곳도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타인과는 너무 멀어지고 가족과는 지나치게 가까워진다. 동료든 연인이든 만나야 할 사람은 좀처럼 만날 수 없게 되고, 직장이나 학교를 가는 대신 집에 머물러야 하는 가족들은 나름의 고충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공간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문제다.

대형 마트에 장보러 갔을 때다. 물건을 산 후 계산대에 왔는데 계산하는 직원과 손님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소리가 전달되는 공간을 마스크가 차단하고 있었으니 직원의 말을 손님이 잘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몇 번을 되묻자 손님은 귀찮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루에 수백 명씩 이런 실랑이를 해야 한다는 직원의 힘든 하소연이 참 안쓰러웠다.

이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실천한 게 가상공간에서의 물건 구매하기다. 음식이든 물건이든 빠른 시간에 뚝딱 해결되는 인터넷 주문. 사실 나부터도 대부분의 물건을 인터넷 쇼핑몰이나 구매 앱을 이용한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던 사람들도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을 받고나서 신뢰하기 시작했다. 경쟁의 공간에서 판매자들도 좀 더 정직해진 것이다. 디지털 세상이 주목 받는 이유는 가상공간에서의 가격이 더 싼 데다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이 무한하기 때문이란다. 기업들은 이 영역 안에 들어와 공간을 넓히고 점차 팽창하는 중이다. 우리는 지금 가상과 현실의 중간 경계에 살고 있다.

변화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말, 얼마 전 스마트폰 자판기가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그 말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매장에 가서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몇 가지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스마트폰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잖은가.

대지의 공간에서 가상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는 지금,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우리를 놀라게 할는지….

지금 전 세계가 위기다. 위기에서 창조는 이루어지고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다.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르는 공간에서 공간으로의 이동. 아무리 많은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 해도 인간의 인간다움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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