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소나무
저 소나무
  • 제주일보
  • 승인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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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출구도 퇴로도 없다. 애초 선택되지 않았다. 선 자리에 버텨 있을 뿐 지(地)의 이(利)도 있을 턱이 없다. 앞뒤 꽉 막힌 형국이다. 바람도 지레 저를 위한 마련이 없는 걸 앎인지 지나다 들르되 오래 머물지 않는다. 소음 탓에 새의 내왕도 뜸한 자락.

신제주 연동으로 이사와 이곳 사정에 어둡고 낯선 공기가 서먹해 산책에 나섰다. 대기업이 호텔 같은 집을 짓는다고 한창 판을 벌인 길모퉁이를 돌아 나온다. 기업은 멀리 이 섬에까지 야금야금 저들의 억센 손길을 뻗치는가. 순박한 섬사람들은 큰손이 틈입해 벌인 현장에서 날품팔이로 간신히 하루를 걷어낸다. 자재를 들어 올리다 공중에 우뚝 멈춘 대형 철탑이 흉물스럽다. 서른 해를 눌러산 읍내에선 본 적 없는 진풍경이다.

맥 풀린 다리가 한길 건너 도심 속 작은 숲 난간에 몸을 기대 세운다. 무겁던 눈썹이 번쩍 띄더니 눈앞 한 그루 소나무에 움찔 놀란다. 오싹하게 주위를 압도하는 서늘한 저 위용.

물이 흐르다 멎어 버린 건천인가. 비스듬히 내린 지반이 퇴적층을 만들었고 거기 좁디좁은 밑바닥, 잡풀과 잡목으로 얽히고설킨 덤불 속인데 아랑곳없이 무뚝뚝하게 서 있다. 기골 장대해 초면에 기가 팍 죽는다. 말을 잊은 지 오랜 듯 바위보다 굳게 다문 침묵의 입. 자지레하게 기어오르는 넝쿨들에 밑동은 깊이 파묻혔고, 줄기의 반쯤은 이미 둘레를 알아볼 수 없게 겹겹이 휘감겼다. 눈대중이지만 한 아름으로는 어림없겠다.

잡다한 초목들이 나무를 졸졸 따르는 진중의 군졸들 같다. 온몸으로 품었으니 저것들 편안하게 몸 맡기고 사는 듬직한 숙주다.

저 나무, 잡스러운 것들에 휩싸여 그들에 기꺼이 품을 내주고도 저는 저리 무덤덤한가. 제 삶이 있긴 한가. 저러고 온갖 풍상을 버텨 온 근기가 놀랍다. 층층이 길고 굵직하게 뻗은 거대한 가지들, 올려다보거니 치솟는 기운을 떠받친 들보 같은 우듬지의 안정감, 줄기와 가지들 수평 수직의 절묘한 조화에 전율한다.

너끈히 나이 백세에 오십을 얹었으리. 그러고도 저토록 장대하니 노송이란 말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하겠다. 우러르거니, 천년을 독야청청하리라. 나이 대소간 하고 눈을 떼지 못하는 게 군자다운 풍모다. 묻노니, 본디 통속과는 연(緣)이 아니라 궁벽한 곳에 뿌리내린 것이냐. 사람을 떠나 자연에 몸을 놓았으니, 이미 처사요 숨어 사는 은자(隱者)다. 그래 네 덕목이 무욕·무심이구나.

시답잖은 생각일까. 저 소나무를 도민의 집 도청 인근이나 사람 몰리는 근린공원 볕 바른 곳에다 옮겨 놓으면 어떨까. 혹여 장비를 들이댄다면 펄펄 뛰며 격노할지 모른다. 지금 자족(自足)하니 그냥 놔두라고. 두 눈 부릅떠 불호령 할까. 하늘을 갈라 놓는 천둥의 소리로 꾸짖을지도 모른다. 내 잣대이고 관법이지, 저 소나무의 눈이 아니고 방식이 아니고 원칙도 기준도 아니다.

아침 안개가 짙으니 한낮 볕이 뜨겁겠다. 열기가 걷혀 갈 늦은 하오쯤, 울울한 숲과 높은 건물의 그늘을 지나 저 소나무를 찾으려 한다. 사람들은 더위에 축 처져도 나무는 여상하게 청청할 것 아닌가.

시작은 오늘 저녁 무렵이어도 좋겠다. 대면 관계에서 자주 말을 걸어야겠다. 저 소나무가 지닌 내밀한 침묵의 의미와 깊이와 무게의 그 두께를 설렁설렁 풀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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