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용기 있는 진짜 보수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에 용기 있는 진짜 보수가 필요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새가 양 날개로 나는 것처럼, 마차가 두 바퀴로 가는 것처럼, 보수와 진보가, 오른쪽과 왼쪽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사회는 건강하게 굴러갈 수가 있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 보수가 지리멸렬했다. 한쪽이 너무 기울어져 있다. 그 원인은 보수가 지키고 보호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와 닿지 않았다. 제대로 된 보수주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스스로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거짓 보수, 말로만 하는 보수주의자가 많았다. 그렇기에 국민이 점점 보수의 정체성과 실체적인 모습에 실망하고 멀어지는 것이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주의가 정체성을 가지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보주의자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이야기하면서도 국가와 민족의 번영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에 처해버렸다.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진보와 보수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에는 부분과 전체의 문제다. 부분이 없으면 전체가 없고 전체가 없으면 부분도 없다. 진보는 개개인의 삶에, 보수는 국민 전체의 삶에 각각 초점을 맞춘다. 한 가지 예로 흉악범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그 개인의 삶의 측면에서 볼 때는 너무나 가혹한 짓이다. 그래서 진보는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다. 그러나 보수는 전체를 보기 때문에 입장이 다르다. 사형제가 가지는 범죄 예방 효과가 국민 전체의 복리에 좋기 때문에 사형제도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이다.

또한 어려움을 겪는 영세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업형 마트가 규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진보의 입장이다. 그러나 더 싸게, 더 편리하게 물건을 보급 받음으로써 국민 전체의 복리가 커질 수 있다고, 그런 규제에 반대하는 것이 보수의 몫이다. 진보는 수입자유화에 반대하는 경향이지만, 보수는 경쟁 촉진을 통해 나라 전체의 파이(pie)를 키울 수 있다고 보기에 옹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가 각각 그들의 시각에서 크게 외쳐 줄 때 부분과 전체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을 지켜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있는 보수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크다. 보수가 스스로 지켜야 할 가치를 찾지 못함에 따라 진보 또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처럼 진보는 보수보다 국민에게 더 호감을 사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취약계층을 시급히 구제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그 어려운 취약계층의 생활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국민의 공감을 쉽게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럴 때 그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그룹은 바로 보수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당연히 최대한 도와야 하지만 그것이 나라의 미래, 바로 온 국민의 삶에 과도한 타격을 주지 않도록 제어장치 발동은 보수의 몫이다. 보수는 국민에게 전략적이고 설득력이 있게 다가가는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 미래통합당 등 보수의 기치를 내건 정당을 보면 진보에 비해 제대로 된 보수주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현재 정치 상항은 나라와 전체 국민의 미래를 생각하여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 정책을 거부하고 옳고 그름을 당당히 주장하는 용기 있는 진짜 보수가 필요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