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힘
필사의 힘
  • 제주일보
  • 승인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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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수필가

신의 발자취를 좇고 있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단 하루도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바로 성경을 필사하는 일이다. 이 년 넘게 하다 보니 노트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경건하게 마음을 바로잡고 쓰노라면 결이 곱고 순한 정신이 깃드는 걸 느낀다.

성경책 두께만 보아도 엄두가 나지 않아 넘보지 못할 것으로 여겼다. 시어머니께서는 성경을 네 번이나 필사하셨다. 오랫동안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다. 신약성경만 해도 1500여 페이지에 달한다. ‘저 많은 양을 나도 필사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지 못했다.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작아져 버렸다. 생애 마지막 날까지 시도해 보지 못할 것 같아 고개를 떨어뜨린 적이 많았다.

새로 부임해 오신 본당 신부님께서 강론 시간에 요한복음을 필사하자는 말씀을 하셨다. 기간 안에 제출하는 신자에게는 상품권을 준다고 한다. 신앙이 돈독한 신자에게나 어울릴 일이라고 생각하며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신부님께선 두 달이 지나는 동안 몇 번이나 성경 쓰기를 강조하셨다.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완벽을 기대하는 성격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한두 줄이라도 써보자.’라는 마음이 생겼다. 끝까지 쓰지 못하면 중간에 그만두어도 된다는 생각에 이르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처음부터 성경 한 권을 다 써야 한다는 중압감을 떨쳐 버리니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누가 검사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틀에 가두어 두었는지 모르겠다.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라는 말씀이 왜 이렇게 새삼스럽게 느껴질까. “천국은 너희 마음에 있다.”라는 성경 구절도 하루의 언행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자주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게 부끄럽다. 그럴 때마다 위선적이지 않게,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신의 사랑은 절대적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량 무한하다는데 세상은 어두운 곳이 너무 많다. 비행기가 추락할 때 신은 어디에 있었을까. 세월호가 침몰할 때 신은 왜 일부의 사람들만 살려주었을까. 가끔은 이런 의문이 조물주의 뜻을 다 알지 못하면서 생각으로 불손을 저지르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네 지혜 너머의 것까지 알려고 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어떤 일을 오랫동안 혼자 꿋꿋이 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 피곤하여 일찍 잠을 자야 하거나 실행하지 못할 것 같은 날은 한 줄만이라도 써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썼다. 한 번에 많이 써야 하는 마음을 가지면 피로도가 높아진다. 부담을 전혀 갖지 않을 수는 없지만 명쾌한 한 가지 룰은 있어야 자신을 통제하기 쉽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를 소개한 책자에서 한 촌부가 불교 경전을 붓글씨로 옮겨적었다는 대목이었다. 지금처럼 펜으로 쉽게 쓰는 것도 아니고 먹을 갈아 한지에 옮겨 쓰는 일은 시작 단계부터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했으리라. 가지런한 글씨체는 그의 올곧은 마음과 같이 단정하고 우아했다. 백지에 옮겨 적는 동안 몸과 마음이 정화되었을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존경의 마음이 새롭다.

명문장가의 글을 옮겨 적거나, 어떤 종교의 경전을 써 보기를 독자들께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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