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먹빛처럼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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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먹글이 있는 집
한곬 현병찬 선생의 작업실이자 전시실
온통 흑빛이고 묵향 흘러
7월의 첫 만남 ‘바람난장’은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품고 있는 ‘먹글이 있는 집’에서 펼쳐졌다.
7월의 첫 만남 ‘바람난장’은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품고 있는 ‘먹글이 있는 집’에서 펼쳐졌다.

먹빛에 스민 예술의 향기

 

온통 먹빛이고 묵향이다. 바람처럼 부드럽게, 물처럼 자유로이 흐르는 검은 먹선의 향연. 한지 위에서 제각각 다른 얼굴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춤추듯 노래하는 글씨들. 종이 하나에 붓 한 자루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이토록 빛나던 적이 있던가.

 

7월의 첫 만남 바람난장은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품고 있는 먹글이 있는 집에서 펼쳐졌다. 서예가 한곬 현병찬 선생의 작업실이자 전시실이다. 코로나19로 설 자리를 헤매던 바람난장을 위해 기꺼이 공간을 제공했다. 지난달에 막을 내린 한글서예대축제에 참여한 작품들 안에서 난장은 시작되었다.

 

음악(전병규, 현희순), 먹의 흔적을 따라 대금 가락이 흐른다. 전병규 국악단 가향 대표의 연주 ‘사랑의 슬픔’이 현희순 명창의 피아노 반주와 어우러진다.
음악(전병규, 현희순), 먹의 흔적을 따라 대금 가락이 흐른다. 전병규 국악단 가향 대표의 연주 ‘사랑의 슬픔’이 현희순 명창의 피아노 반주와 어우러진다.

서예란 무엇일까. 한 획 한 획이 모여 어렵게 완성되는 서예라는 두 글자. 수없이 쓰다만 종이를 버리고, 쉼 없이 먹을 갈고, 화가 나면 쓰고, 마음을 위로하려 쓰고, 슬프고 지칠 때도 붓을 들었을 이들. 절대 고독과 침묵 안에서 심장은 먹빛처럼 까맣게 타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렇게 스스로를 초월하며 간절하게 써내려간 먹의 흔적을 따라 대금 가락이 흐른다. 전병규님의 연주 사랑의 슬픔(반주 현희순)’이다.

 

현병찬 선생, ‘한곬’은 현병찬 선생의 아호다. 한길을 걷는다는 뜻이다. 한 눈 팔지 않고 한글 서예의 길을 닦고 걸어온 선구자적인 선생의 삶을 그대로 닮았다.
현병찬 선생, ‘한곬’은 현병찬 선생의 아호다. 한길을 걷는다는 뜻이다. 한 눈 팔지 않고 한글 서예의 길을 닦고 걸어온 선구자적인 선생의 삶을 그대로 닮았다.

‘한곬은 현병찬 선생의 아호다. 한길을 걷는다는 뜻이다. 한 눈 팔지 않고 한글 서예의 길을 닦고 걸어온 선구자적인 선생의 삶을 그대로 닮았다. 선생은 제주의 서예가 소암 현중화 선생과 해정 박태준 선생에게 서예를 배웠다. 예서와 초서 등 다양한 한문 서체를 접했지만 마침내 찾아낸 건 다름 아닌 한글이었다. 스스로 제주 한글 서예의 뿌리가 되어 선생만의 개성 있는 글씨를 완성했다.

 

음악(김영곤)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에 심취할 즈음, 김영곤 성악가의 한국 가곡 ‘별 헤는 밤’과 ‘까치가 울면’이 울려 퍼진다.
음악(김영곤)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에 심취할 즈음, 김영곤 성악가의 한국 가곡 ‘별 헤는 밤’과 ‘까치가 울면’이 울려 퍼진다.

근엄하면서도 편안하고 정적이면서 생동감 있는 한글 서예. 그것은 한글이 갖는 조형미와 먹에서만 느껴지는 광활한 깊이가 있기에 가능하다. 붓글씨마다 제각각 다른 율동감과 이미지가 그려지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에 심취할 즈음, 성악가 김영곤님의 한국 가곡 별 헤는 밤까치가 울면이 울려 퍼진다. 군더더기 없는 노랫말의 구절구절에 마음이 젖어든다.

 

 

현병찬 선생의 한글 사랑은 시 사랑으로 옮겨갔다. 2015년 시인이라는 명함을 하나 더 얻었다. 가장 간결한 한글로 삶을 노래하고 있다. 곶자왈은 제주어의 맛을 고스란히 살려낸 대표작 중 하나다. 김정희와 시놀이 팀의 낭송이 어우러진 곶자왈은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어쩌면 서예란 몇 가지 안 되는 단순한 재료로 예술의 경지를 끌어올려야 하는 외롭고 고단한 세계일지 모른다. 부박한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은 깊고 넓은 먹의 세계다. 그 안에서 자기 내면과 싸우며 자기만의 글씨를 완성하는 것. 결국 서예는 붓으로 글씨를 쓰는 예술이기 전에 글씨를 대하는 마음가짐, 스스로를 향한 성찰인 셈이다.

 

노트북과 휴대폰에 밀려 진짜 내 글씨를 써 본 적이 언제였을까. 세상의 속도와는 반대로 여전히 오래된 붓을 손에 쥔 이들. 오늘도 붓 한 자루에 먹을 빨아들이고, 삶을 내뱉으며, 글씨를 써내려갈 것이다. 그 고독하고 외로운 세계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견뎌내면서.

 

사회 정민자

그림 유창훈

시낭송 김정희와 시놀이 (김정희 이정아 이혜정)

대금, 소금 전병규

반주 현희순

성악 윤경희, 김영곤

플루트 이관홍

오카리나 팬플루트 서란영

노래 김영헌

음향 김 송

영상 김성수

글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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