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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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수,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논설위원

시장이나 병원, 장례식장을 다녀올 때마다 느끼는 공통점이 없지 않다. 누구에게나 삶은 진지하고, 죽음은 회피할 도리가 없이 눈앞에 놓여 있다. 그래서 괜히 마음이 가라앉고 쳐질 때는 가까운 시장이나 병원에 찾아가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 두 곳에 찾아가보면 누구나 살아남고 싶어 몸부림치고 있는 생생한 삶과 사람이 널려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을 찾아가 평생 동안 고인과 어떤 관계에 놓여있었더라도 빈소 앞에 서서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슨 생각이 들어야 마땅한 일이겠는가? 입으로는 약속을 지킨다고 몇 번인가 다짐했던 사람도 그렇지 못하고 떠나갈 때 몇 마디 사연이나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었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영영 이별이다. 떠나는 이나 살아남은 이에게 하루하루는 특별한 순간이다.

이처럼 하루하루가 특별하듯이 올해는 너무나 특별한 해이다. 어느덧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일어난 지 70년 되는 해이다. 그런데 남북관계가 20년 이전 상태로 되돌아갔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김일성 주석 남북정상회담을 바로 앞두고 김 주석이 갑자기 이 세상을 하직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이후 최대 이변이었다. 그 다음에 2000년 김대중 대통령-김정일 위원장 6·15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대단했다. 2007년에 노무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가 10·4남북공동선언을 했다. 그리고 2018냔 김정일 위원장 역시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와 4·27 판문점남북공동선언에 서명을 했다. 그런데 북측은 약속 이행이 안 되었다면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부수어버림으로써 그걸 한순간에 뒤집어 버렸다. 적대정책을 포기하자던 할아버지의 유훈을 버린 셈이다. 이제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가 끝난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는 이런 남북관계 변화를 마치 평생을 해로하며 같이 살자하던 남녀가 이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반응이다. 아니 남과 북은 피를 나눈 형제관계란다. 그러니 아웅다웅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둥 곧 교류·협력·화해·상생·번영의 길을 되찾아 갈 것이라고 기원하는 이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아예 두 나라의 주권을 존중해서 양국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남북체제와 함께 70년 이상 자연 상태로 되돌아 가 있는 비무장지대 주변 지역을 제3지대로 공동 개발하여 공존지대를 형성함으로써 남북지역과 평화지역을 포함하여 3개 체제를 운영해 가면서 국가연합이나 남북연방국가를 도모하자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제시하기도 한다.

민족분단 70년 체제를 극복하는 길은 아무래도 남북공존과 치유의 길을 우리끼리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다. 남북 양측은 아직도 국제법상 기술적 전쟁상태를 끝장내는 일부터 해야 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주변 강대국 사이에 관계발전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민족 내부의 자주역량의 결실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본 아베정권과 같이 한반도 평화번영을 혐오하는 반평화 호전집단의 방해와 저지에도 불구하고 남북양측은 평화생명의 당사자로서 더욱 튼튼하고 되돌아 갈 수 없는 평화생명공동체를 한반도에 구축·유지·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도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70년을 끝장내는 데 필요한 동아시아 6개국의 공존·치유·교류의 중심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여섯 번째 남북정상회담이나 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장소로 너무나 적당하기 그지없는 위치에 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청정지역이기도 하다. 한반도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다시 시작할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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