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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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휴가철이다. 일상이 힘들 때 휴가는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로 쉼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해외 대신 제주를 찾는 이들로 하늘길과 바닷길이 복잡할 테고, 한동안 조그마한 섬이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올여름은 휴가를 맞아 아이들은 오지 않을 예정이다. 그동안 미루다 못한 일을 정리하며, 꼭 하고 싶었던 것에 빠져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집을 떠나는 것만이 휴가가 아니다. 제 갈 길 부지런히 가고 있으니, 섭섭하다거나 아쉽다는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와도 좋고 안 와도 그러려니.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난 후, 그맘때만 되면 꼽아 기다리던 조급증에서 벗어나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떠나보내기는 시작됐고 그게 면역이 됐다.

우리 부부는 자식들에게 되도록 매이지 않고 살려고 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릴 일도 줄었다. 멋 내기도 심드렁하다. 입에 맞는 음식 찾아 먹고, 하고 싶은 것에 망설이지 말자 뜻을 모았다. 낮은 곳에 시선을 두고 소확행으로 사는 삶이면 족하다. 늘그막 욕심은 화를 부른다. 이만하면 더 바랄 것 없이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여름을 어떻게 보낼까. 지척에 바다가 있고 오름과 휴양림이 가까이 있다. 남들이 비행기 타고 찾아오는 관광지에서 원 없이 누리고 산다. 간단하게 점심을 챙겨 절물휴양림에 가도 된다. 느릿느릿 오름 허리 한 바퀴 돌고, 소나무 아래 돗자리 깔고 한나절을 보내도 좋다. 복잡한 생각을 신발과 함께 벗어 놓고, 초록 물이 죽죽 흘러내릴 것 같은 숲의 향기에 취해 보리라. 귀를 열어 살랑대는 바람에 나뭇잎 비비는 소리, 새들의 재잘거림을 듣다 풋잠에 빠지는 것도 괜찮겠다.

더위로 잠들지 못해 뒤척였던 이른 새벽, 이슬을 차며 별도봉을 오르는 일도 신선하다. 가까운 부두엔 부지런한 어선들이, 물비늘 거스르며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비릿한 냄새는 하루를 여는 원동력이다. 그 새벽 어시장은 팔팔한 생동감으로 충만하리라. 어부들의 땀 흘린 노역으로 왁자한 파시가 눈에 선하다. 동쪽 하늘이 벌겋게 물들며 두둥실 해가 떠오르면, 두 손 모아 해돋이를 지켜보고 싶다.

태풍이 몇 개 지나갈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수많은 생명을 품어 키우는 바다는 가슴이 복잡할 게다. 어찌 평온한 얼굴로만 견딜 수 있을까. 멍석처럼 둘둘 말아 올려 패대기치다 게워내는 몸부림은 차라리 장쾌하다. 폭풍 뒤에 오는 평화, 그렇게 토해내야 평온이 오고 질서가 잡힌다. 그런 고뇌와 광란의 바다에서 대리만족을,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갈망이 꿈틀댄다. 내 안의 갈등과 몸부림을 부려 놓고, 빈 가슴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우리라.

무료한 날 책장을 넘기다 책갈피에서 글감을 찾거나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그 기쁨이야 어찌 말로 다할까. 책 속에서 얼굴 모르는 이들과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심금을 울리는 글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면, 곧 행간 속 감성 교류가 될 테고. 그러다 혹 은혜로운 사람을 만날지 어찌 알랴.

틈틈이 글을 쓰는 게 일상이다. 오랫동안 써 온 글이 수북하지만, 부피보다 실속이 없는 가난한 곳간이다. 좋은 수필 앞에서 상대적 빈곤감으로 초라해지곤 한다. 올여름엔 내 건조한 영혼을 눈 뜨게 할 글 한 편 나온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런 옥동자를 탄생시킨다면 더위를 한꺼번에 날릴 시원한 여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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