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는 냄새가 있다…눅눅하게 절여진 먹의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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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먹글이 있는 집(下)
추사 김정희도 벼루 열 개에 구멍을 내고 천 개 붓 닳았으니
예술가에게 편안하고 잘 닦인 길이란 없는 법이니…

먹에 대한 고찰

 

묵향천리(墨香千里). 천리를 간다는 묵향이다. 멀수록 더욱 은은하게 퍼져나간다는 뜻이다. 단단하고 비릿했던 먹의 냄새가 예술의 향기가 된다는 것. 서예는 이렇듯 먹이란 물질을 다시 보게 한다. 유창훈作, 먹내음 붓길따라
묵향천리(墨香千里). 천리를 간다는 묵향이다. 멀수록 더욱 은은하게 퍼져나간다는 뜻이다. 단단하고 비릿했던 먹의 냄새가 예술의 향기가 된다는 것. 서예는 이렇듯 먹이란 물질을 다시 보게 한다. 유창훈作, 먹내음 붓길따라

이 비는 얼마나 더 내리려나. 계속되는 장맛비에 온 섬이 젖어있다. 비에는 냄새가 있다. 길고 오랠수록 진하고 먹먹한 냄새를 풍긴다. 어딘가 비릿하면서 눅눅하게 절여진 냄새. 그것은 마치 의 냄새를 닮았다.

 

(). 이름만으로 깊고 무겁고 어두운 존재다. 생명력과도 거리가 멀다. 먹이 갖는 검정색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서예는 다분히 역설적이다. 작품마다 검은 먹 선으로 자기만의 개성 있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찍고 내리치고 흘리고 휘어지며, 붓 끝이 향하는 대로 춤을 추고 있으니까. 그리하여 어둡지만 빛나는 생명의 냄새. ‘묵향을 음미해 본다. 김정희와 시놀이 팀의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정작에 어찌할까 세필을 받쳐들고

 

선지(宣紙) 젖은 안부 아득한 운필 끝에

 

차라리 적막입니다, 속속들이 그 묵혼의

 

달빛도 타는 숨결 아슴푸레 스미는 듯

 

지등에 불빛인 양 여남은 밤을 건너

 

머리맡 어리는 먹빛, 무릎연적 당깁니다

 

-한분옥,‘묵향 품으니전문

 

이관홍 오보이스트의 플루트 연주 ‘You Raise Me Up’이 잔잔하게 울린다.
이관홍 오보이스트의 플루트 연주 ‘You Raise Me Up’이 잔잔하게 울린다.

서예 작품에는 묘한 긴장감이 돈다. 먹이 장악하는 검은 빛 안에서도 희고 고운 여백의 미가 흐르고, 때론 천연스러운 표정의 글씨마저도 사실은 치밀하게 계산된 자연스러움이다. 범인은 모르는, 먹의 호흡인 것이다. ‘달빛도 타는 숨결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머리맡 어리는 먹빛의 그림자를 삼키며, 먹과 내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내통의 결실인 것이다.

 

서란영 팬플루트 연주가가 ‘희망가’를 연주한다. 팬플루트의 아름다운 소리는 그 자체로 깊은 위로가 된다.
서란영 팬플루트 연주가가 ‘희망가’를 연주한다. 팬플루트의 아름다운 소리는 그 자체로 깊은 위로가 된다.

애초 예술가에게 편안하고 잘 닦인 길이란 없다. 추사 김정희도 벼루 열 개에 구멍을 내고 천 개의 붓이 닳도록 써내려갔으나, 여전히 자신의 글씨는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았는가. 붓글씨의 예술적 성취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보여주는 일화다. 고행에 가깝다는 그 길. 서둘러 구하려 하지 않고 침묵으로 버텨온 그 길. 이관홍님의 플롯 연주 ‘You Raise Me Up’, 서란영님의 팬플루트 연주 희망가는 그 자체로 깊은 위로다.

 

시원한 소나기를 닮은 통기타 가수 김영헌의 노래가 반갑다.
시원한 소나기를 닮은 통기타 가수 김영헌의 노래가 반갑다.

운필(運筆). 살면서 붓을 잡아본 일이 몇 번이나 될까. 언뜻 쉬워 보이지만 막상 붓을 잡고 나면 직선의 한 획도 긋기 어렵다고 한다. 가냘픈 호흡에도 붓 끝은 떨리고 흔들리길 반복하니까. 그러니 서예의 시작은 마음의 수련일지도 모른다. 거기서 길러낸 내공으로 정신을 붙잡고 붓 끝에 혼을 불어넣는 작업인 것이다. 그 뜨겁고 치열했을 먹의 시간을 보았더니 비 생각이 간절해진 것일까. 시원한 소나기를 닮은 통기타 가수 김영헌님의 노래가 반갑다.

 

묵향천리(墨香千里). 천리를 간다는 묵향이다. 멀수록 더욱 은은하게 퍼져나간다는 뜻이다. 단단하고 비릿했던 먹의 냄새가 예술의 향기가 된다는 것. 서예는 이렇듯 먹이란 물질을 다시 보게 한다. 단순하지만 변화무쌍한 먹의 깊이를 돌아보게 한다. 그런 남다른 먹의 세계를 편애하며 먹의 예술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바치는 노래. 성악가 윤경희 님의 사랑의 찬가가 눈부시다.

 

사회를 맡은 정민자 2020 바람난장 대표의 그윽한 목소리가 먹글이 있는 집을 은은하게 감싼다.
사회를 맡은 정민자 2020 바람난장 대표의 그윽한 목소리가 먹글이 있는 집을 은은하게 감싼다.

<바람난장>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그윽한 묵향이 뒤따라 흐른다. 그새 구름은 가벼워졌고 하늘도 환하다. 비가 그친 여름날의 오후가 그렇게 아쉽게 지나간다.

다음 바람난장은 25일 오전 930분 제주목관아에서 진행됩니다.

사회 정민자

그림 유창훈

시낭송 김정희와 시놀이 (김정희 이정아 이혜정)

대금, 소금 전병규

반주 현희순

성악 윤경희, 김영곤

플루트 이관홍

팬플루트 서란영

노래 김영헌

음향 김 송

영상 김성수

사진 허영숙

글 김은정

장소 협조 먹글이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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