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는다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는다
  • 제주일보
  • 승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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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농업인·수필가)

올망졸망 매달린 감귤들이, 아이들 얼굴들처럼 귀엽고 앙증맞다.

탱글탱글 여물어 가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전(心田), 희망의 열매들 알알이 풋풋하다. 그렇지만 결코 방심해선 안된다. 수확을 마치고 갈무리까지 끝나야 비로소 농사의 성패가 결정된다는 선대의 가르침이, 농부의 가슴에 화인(火印)처럼 선명하기 때문이다.

7월의 농촌은 농약살포를 제외하면, 모처럼 한숨 돌려도 될 법한 농한기(農閑期)이다. 그렇지만 감귤농가들은, 두 다리 뻗고 나앉을 여유가 없다. 열매 솎기와 열매 매달기 작업들이 농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루뭉술히 바라보면, 갈맷빛 감귤원은 지극히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그렇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열매들이 각양각색이고 천차만별이다. 들쑥날쑥한 크기로, 상품성을 담보할 수 없는 대과(大果)와 소과(小果)가 적지 않고, 병해충에 노출되어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린 비상품 파치들도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하우스 재배 만감류들은 열매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수양버들처럼 가지들이 축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솎기와 매달기를 미룰 여유가 없는 것이다.

적과는 건너뛰는 일 없이 나무들마다 꼼꼼하게 살피면서 해야 하기 때문에, 일품과 작업시간이 만만치 않다. 큰 나무인 경우는, 몇 그루 하다 보면 하루 해가 노루꼬리처럼 짧다.

열매 매달기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사다리에 올라가 열매들을 끈에 매달아 쇠파이프에 고정해야 하기 때문에, 일품도 많이 들 뿐 아니라 낙상(落傷)의 위험도 있다. 하우스 안 찜통 더위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어쩔 수없이 부족한 일손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인부들은 다섯 명 내외가 팀을 이루어서, 농장들을 옮겨 가며 작업한다. 그런데, 농가들의 작업 시기가 몰려있어 일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중국인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어서 조금 숨통이 트였다지만, 소규모 농장의 농부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이런 이유로, 아내가 특히 고달팠다. 일손을 빌리지 못해, 한 달 남짓 혼자 종일 농장에서 더운 땀을 뿌렸다. 나 또한 제대로 된 일손을 보탤 수 없는 자격지심(自激之心)과 아내의 눈치를 살피느라, 내내 심신(心身)이 성치 않았다.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고, 강물을 버려야 바다가 된다는 경구가 화엄경(華嚴經)’에 있다. 성취를 기원하는 제단(祭壇)에는, 가장 아끼는 희생(犧牲)을 제물(祭物)로 바쳐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편안한 일상 대신 무더위 속에 뿌린 농부들의 땀방울은,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며 바치는 희생의 다른 이름이다.

장마가 길게 이어지면서, 병해충들이 살판났다. 비 그치면 병해충과의 전쟁으로, 마을이 한바탕 시끌벅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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