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후한 얼굴만으로도
온후한 얼굴만으로도
  • 제주일보
  • 승인 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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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삶이란 관계를 맺으며 소통하는 일, 눈 맞춤이 출발점이다. 코로나19가 낳은 비대면의 일상은 사람을 그립게 한다. 역시 부대끼며 살아야 제철 과일 맛이 날 것 같다.

요즘 며칠 사이에 낯선 사람의 소소한 언행으로 기분이 좋았던 시간을 떠올린다.

그제는 점심 후 동네를 산책하는데 마당의 텃밭을 둘러보던 장년의 남자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나도 이내 “네, 안녕하십니까.”하고 답례를 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이렇게 인사를 나누니 기분이 좋았고, 걸음이 경쾌해졌다. 관심의 마력일 테다. 산행이나 여행에서처럼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는 분위기가 이뤄진다면 좀 더 밝은 사회가 되련만.

일전에 테니스엘보약을 처방 받으러 병원을 찾았을 때다. 접수하려고 번호표를 뽑으러 가는데 앞서가던 여인이 번호표를 뽑은 후 뒤돌아 두세 걸음 걷다 발길을 돌려 다시 번호표를 뽑고 내게 건네는 게 아닌가. 낯선 사람에게 이런 배려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오지랖 넓다고 오해 받을 수도 있고 용무가 바쁠 수도 있으니. 장맛비 사이로 잠시 드러나는 햇살을 보는 기분이었다. 잔정이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일 많이 생기길 기원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수눌음인 양.

또 한번은 밤새 비가 내리고 아침에 잦아들자 우산을 들고 운동 삼아 걸을 때였다. 꽤 넓은 물웅덩이 옆을 지날 때 하필 화물차가 다가왔다. 누구나 속도를 줄이는 게 상례지만 그래도 튕기는 물세례를 온전히 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엔 어떤 상황이 일어날까 걱정이 앞섰다. 차는 물방울 하나 튀지 않을 만큼 서행으로 지나갔다. 세상에 이런 운전자도 다 있다니 놀라웠고, ‘난 멋쟁이야’하는 침묵의 소리를 들은 느낌이었다. 나의 운전 행태를 되짚기도 전에 얼굴이 붉어졌다.

세상엔 소소한 듯 소소하지 않은 마음의 등불을 켜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로 인해 살 만한 세상인데, 물질에만 기울어 그 소중함을 간과하는 건 아닐는지.

누구나 나고 살다 죽게 마련이다. 그 가는 길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 피고 기쁨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기를 소망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살이 아닌가. 살피며 걷는 길에도 늘 고통의 허방다리가 있어 허우적거리고 한숨짓고 가슴 에는 시간을 피할 수는 없다. 이럴 때 용기를 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 주변의 크고 작은 온정 덕분이지 싶다. 당시에는 작디작아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뒤돌아보면 더욱 선명해지는 인간애의 눈빛들, 보석 같은 마음들이다.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 회상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 심부름을 나설 때다. 5리쯤 떨어진 중산간의 외할머니댁을 다녀오려면 늘 무섭고 두려웠다. 바람처럼 내달려 보지만 왜 그리 어스름이 빠르게 짙어지는지. 운 좋게 멀리서라도 사람 모습이 보일 때는 일시에 불안이 사라지곤 했다. 이보다 큰 위안이 없었다.

사노라면 미워지고 꼴 보기 싫은 사람도 만나게 된다. 이럴 땐 생전 어머니 말씀이 앞장선다. “까마귀가 제 발 검다고 잘라 버릴 수 있느냐.” 주변 상황을 다 품으며 살아낸 생의 여정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서산마루에 서면 함께 마음 붉어지고 싶다. 얼룩진 내 마음, 이제부터라도 배려의 천으로 닦아야겠다. 그냥 온후한 얼굴만으로도 남을 돕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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