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밥상
아버지의 밥상
  • 제주일보
  • 승인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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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금 수필가

오늘도 잔칫집이다. 만나자고 서로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한 명, 두 명 모여든다. 형제들이 친정 가까이 살고 있어서 누가 연락하지 않아도 핏줄은 당기는가, 만남이 잦은 편이다. 나 역시 수시로 친정집을 드나든다. 속이 시끄러울 때도 아버지 밥상을 받고 나면 잠잠해지고, 복잡한 일들도 아버지 앞에서 수다를 늘어놓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버지에게로 가는 내 발걸음은 이미 관성이 된 지 오래다.

아버지도 형제들의 방문을 반갑게 맞는다. 말씀으로는 왜 자주 오냐며, 밥은 각자 집에 가서 해결하라고 하면서도 금세 저녁상을 차려준다. 밭에서 키운 싱싱한 채소와 어머니의 담백한 손맛이 깃든 음식, 이제는 없다 하면서도 자꾸 무엇인가를 올려놓는 아버지의 투박한 손은 말과 다르다.

팔순이 다 되어가는 아버지가 차려주는 밥상은 언제나 달고 맛있다. 그것은 아마도 부모와 자식에게만 허락된 영혼의 묶임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김치와 채소만 있는 밥상이어도 친정집 식탁은 늘 진수성찬 같은 느낌이다.

항상 큰 산처럼 당당하게 서 계시던 아버지. 세월은 아버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작년,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웬만한 일에는 병원을 찾지 않는 분인데 단단히 탈이 난 모양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새벽부터 채소를 포장하고 공판장까지 배달하다가 기어이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한여름에 젊은 사람도 감당하지 못하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온종일 무리하셨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주사 한 대 맞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검사결과는 입원치료를 해야 했다. 산소호흡기, 링거, 정밀검사. 침대 위에 누운 아버지는 과로와 탈수로 약해진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더위에 늘어져 있을 채소들을 걱정했다. 자식들이 시간을 나누어서 아버지 대신 일을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통원치료를 고집했다. 선망 증상이 수시로 찾아올 때도 상추 박스를 가져오라고 할 정도였다. 아버지의 깊은 의식 속은 온통 밭뿐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육신 하나뿐인 아버지는 돌보아줄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서 친척 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라서 누구도 아버지를 걷어 키우지 못했다. 오직 당신 혼자의 몸으로 세상의 풍파를 감당해야 했던 아버지였으니 당신의 밭은 내가 생각하는 밭 그 이상이었다.

흙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는다고 했던가. 온갖 고생 끝에 사들인 땅에 무엇이든지 뿌리고 심은 것은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주었다. 시들어가던 풀들이 아버지가 정성을 쏟으면 금세 살아났다. 포실포실한 흙을 뚫고 올라오는 싹들은 아버지의 땀으로 낳은 아이들이었다. 정직한 흙은 아버지의 부모이자 스승이며 친구였다. 일가붙이 없이 떠도는 발걸음을 그 흙이 받아주었고 매서운 겨울바람에 꽁꽁 얼어버린 발을 감싸 안아준 것도 흙이었다. 젖은 땅으로 때로는 마른 땅으로 아버지의 인생과 함께하며 깊은 한숨을 다 받아준 흙. 그랬으니 아버지는 병원에서 얼마나 밭에 가고 싶었을까. 보드라운 흙을 만지고 디디고 싶었을까. 흙냄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잡풀 하나 없이 단정한 밭은 군더더기 없는 아버지와 닮았다. 부엌 싱크대에 물 한 방울 흘린 것까지 다 닦아내야 할 만큼 깔끔한 아버지는 밭도 마찬가지였다. 한 치의 비뚤어짐 없이 자로 잰 듯 줄을 맞춰 커가는 채소들, 잘 정돈된 농기구들, 밭 구석의 돌무더기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온몸으로 흙의 소리를 듣고 느끼며 생명을 키워냈다. 인간의 삶이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섭리를 묵묵히 인정한 것은 아닐까. 신이 주신 위대한 여정을 거스르지 않은 채. 현대화의 물결에도 아버지는 꿋꿋하게 밭을 지키고 있다. 하루가 멀다고 밭들이 사라지고 건물이 들어서도 아버지는 여전히 흙과 함께한다.

아버지가 도마 앞에 앉는다. 마지막이라며 생선회를 직접 떠서 밥상 위에 놓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생선회가 식탁 위에서 사라지기 전에 아버지가 또 무언가를 찾아내실 것을.

밥상은 다시 아버지의 손길로 풍성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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