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예찬(禮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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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지구 온난화가 몰고 온 이상 기후 탓일까. 지루한 장마철, 비는 그다지 내리지 않고 습한 기운이 칙칙하게 온몸을 감싸는데, 한라산이 빚어낸 푄현상으로 인한 후텁지근한 날씨가 정신마저 혼미하게 만든다.

땅거미가 지는 때를 기다려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랠 겸 낚싯대를 들고 집을 나섰다. 참으로 오랜만의 출조다. 근자에 들어 용왕님께서 노하셨는지 선뜻 내어주시는 게 별로 없어서 그토록 좋아하던 낚시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쿨러 가득 설레는 마음을 담고 포인트로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에 콧노래가 더해진다. 마음 넓은 바다가 허여하는 음이온의 효과이리라.

때가 때인지라 갯바위마다 바지런한 태공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이내 어둠이 내려앉자 수평선엔 갈치잡이 어선의 어화(漁火)들이 춤을 추고, 갯바위 주변엔 한치를 잡기 위한 찌가 그득하다. 홍록으로 빛을 발하는 찌들이 마치 검은 벨벳 위에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장관이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풍경이다. 한치를 사랑하는 꾼들의 마음이 온전히 투영된 모습이다.

옛 문헌에는 오징어를 오적어(烏賊魚)’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갑오징어를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징어라 부르는 종은 바다에서 나는 귀한 고기라는 의미로 고록어(高祿魚)’라 하였는데, 바로 꼴뚜기의 옛말이다. 오징어는 크게 갑오징어과, 꼴뚜기과, 빨간오징어과로 분류한다. 그래서 꼴뚜기과에 속하는 두족류 중에서도 다리가 한 치밖에 안 된다하여 이름 붙여진 한치의 표준명은 창꼴뚜기이다.

이름이야 어떻든 한치는 비리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식감과 특유의 감칠맛을 지니고 있어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식재료로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사랑받는 어종이다. 어디 그뿐인가. 열량이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타우린, 단백질, 비타민 E 등 각종 유익한 영양소들이 가득하여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다이어트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특별한 기교가 필요치 않기에 한치 낚시를 즐기는 마니아층도 상당히 두터운 편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유독 한치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어부나 조사(釣師)들의 하소연이 증명하듯 가격이 많이 올라 금치로도 불리고 있지만, 때가 되면 한치는 다시 돌아와 우리 바다와 식탁을 풍요롭게 변모시킬 것이라 믿는다.

바다와 즐거운 담소를 나누다 돌아오는 길, 비록 한치는 몇 마리 낚지 못했지만 다음 출조 때는이라는 기대감으로 발걸음이 결코 무겁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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