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침묵과 치유
숲의 침묵과 치유
  • 제주일보
  • 승인 20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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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대표·산림치유지도사/논설위원

서울시장의 성희롱 의혹과 죽음은 예고 없이 터진 핵폭탄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국민의 눈과 귀를 일시에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다. 사안이 워낙 커 관계자들마저 한동안 숨죽여 지켜볼 뿐이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비서진들마저 입을 다물었다. 성범죄와 관련해 그동안 엄벌의지를 밝히거나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던 관계기관이나 단체 활동가들조차 입장표명을 꺼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안의 중대성에 따른 책임과 파장이 뒤따를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책임회피를 위한 방법으로 침묵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침묵했다고 해서 의사 없음이나 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는 또 다른 의사 표현의 한 방법이다.

침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때나 괴로워 말하기 싫을 때도 나타난다. 또한 남녀 간의 결별을 앞두거나 사업경영에 있어 책임자가 중대한 결단을 하기에 앞서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침묵은 상대방을 압박하는 수단이거나 책임회피를 위한 방편으로 사용된다. 단절과 거부의 의사 표현일 때도 그렇다.

이를 볼 때 침묵은 개인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터득한 무언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말을 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과정에 이해득실이 담겨 있다. 다분히 계산적이다. 그렇기에 침묵은 사안에 따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숲의 침묵은 다르다. 숲이 만들어질 때부터 침묵은 형성돼 있기에 선천적이며 순수하다. 장구한 세월 동안 한자리에서 말없이 붙박이처럼 서 있는 침묵이다. 그래서 숲의 침묵에는 이해관계 속에 흐르는 무거움이 아니라 모두를 아우르는 묵직함이 있다. 낮이나 밤이나 흔들림 없이 일정한 흐름으로 주고받는 무언의 대화이다.

때로는 나뭇가지마저 미동 하나 없이 고요함을 선사한다. 물웅덩이 위의 햇빛 반짝임조차 멈출 만큼 침착하다. 아무도 모르게 다가온 안개가 오름 하나를 자신의 장막 속으로 조용히 숨겨놓기도 한다.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날에는 하얀 눈으로 푹 눌러쓴 나뭇가지의 무게감 또한 침묵으로 말을 한다.

숲의 침묵에는 고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움직임들과 버무려지면서 맛깔스러울 때도 있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아주 작은 움직임들의 소리가 들린다. 떨어진 나뭇잎이 바람에 못 이겨 뒹군다. 작은 벌레 하나가 땅의 낙엽을 걷어 올리며 먹이를 찾아 기어 다닌다. 나무 사이를 뚫고 내달리는 바람 소리도 있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사각사각 풀벌레 소리,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까지 침묵에 장단을 맞춘다.

그래서 묵직한 숲의 침묵 앞에서 참다못한 박노해 시인도 침묵의 불을 지피지 않았던가. ‘때로 침묵이 말을 한다/말은 침묵을 낳지 못하지만/깊은 침묵은 이미 그 자체로/말보다 더 큰 울림으로 말하고 있으니/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아는 자/때맞춰 옳은 말을 할 줄 아는 자/돌아보니 나는 너무 많은 말을 했다/이제는 내 깊은 곳의 영혼이 말할 차례다/광야가 말하듯, 사막이 말하듯, 우주가 우리를 감싸 안고 진실을 속삭이도록

이렇듯 숲의 침묵은 모두를 내면의 고요한 세상으로 이끈다. 육체와 정신, 심지어 영혼까지 평온을 평정한다. 사람들이 계산된 스트레스 침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진실한 치유의 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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