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아픔 속에 숨겨진 찬란한 왕조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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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뉴질랜드 통가리로 국립공원
후에,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
폭격와 전투로 많은 유산 파괴돼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돼 복구
왕궁과 현대사 상흔 동시에 만나
동바시장·보티사우 등 볼거리 다양
후에궁 정문 모습. 옛 수도의 중심이었던 후에 왕궁은 응우옌 왕조의 13대 왕들이 정사를 펼쳤던 도성이다.

베트남에서 우리의 단군왕검에 해당하는 시조는 여러 명의 흥왕(Hùng Vương)’들이다. 5000년 전 건국을 기념해 매년 음력 310일을 국가 공휴일로 정했다. 이날 베트남 사람들은 흥왕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 전국적으로 축제를 연다. 우리에게 익숙한 월남이란 국명의 기원은 진시황의 진나라 관리였던 조타가 베트남 북부에 세운 남월(南越, Nam Viet) 왕조이다. ‘베트남이란 국명도 이때의 남비엣에 기원한다. 남월 왕조는 건국 100년 후 한무제에게 정벌돼 1000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왕조가 여러 번 바뀌었고 1802년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가 세워졌다.

프랑스의 지원에 힘입어 세워진 왕조였다. 이때 옛 국명 남월월남(越南, Viet Nam)으로 바꿨다. 이후 60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1945년 독립 후에는 우리 한반도처럼 주변 외세들에 의해 남과 북으로 분열됐다.

분열 이후 1975년까지 30년간 프랑스와의 인도차이나 전쟁과 미국과의 베트남 전쟁을 연이어 치렀다.

후에(Hue)1945년 공산 정권이 들어서며 수도를 하노이로 옮기기 전까지, 마지막 봉건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다. 신생 공산 정권은 후에의 역사 유적들을 봉건 잔재로 여겨 방치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남과 북 베트남 모두에게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지면서 쟁탈을 위한 폭격과 전투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이 과정에서 옛 왕도 후에의 찬란했던 문화 유적과 유물들은 상당 부분 멸실됐다.

후에는 남중국해로 흐르는 흐엉강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인 강북 지구와 신시가지인 강남지구로 나뉜다. 후에 여행은 오랜 세월 복원작업이 진행 중인 후에 왕궁을 비롯해 여러 왕릉과 사원 등 베트남 옛 왕조의 찬란했던 유적들을 만나보는 게 핵심이다. 거기에 전통 재래시장을 찾아 베트남 서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정도 좋다. 도심 구간은 천천히 걸어서, 외곽 명소는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이면 이틀만으로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

후에 왕궁 앞 광장의 깃발탑 정경.
후에 왕궁 앞 광장의 깃발탑 정경.

후에는 650떨어진 호치민시에서는 기차로 22시간, 다낭에서는 2시간 30분 거리다. 호치민-다낭 구간은 비행기를 이용하고 다낭-후에 구간은 기차를 타는 것도 좋다.

옛 수도의 중심이었던 후에 왕궁은 응우옌 왕조의 13대 왕들이 정사를 펼쳤던 도성이다. 베트남 마지막 봉건왕조의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후 베트남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분열되면서 지리·역사적으로 베트남의 중심이었던 후에 왕궁은 양측 모두에게 반드시 쟁탈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변했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미군과 베트콩의 폭격

이 반복되면서 왕궁의 소중한 역사 유물들은 대부분 파괴됐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이후 활발한 복원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후에 왕궁은 베트남 옛 왕조의 유물과 현대사의 상흔들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후에 여행에선 0순위 방문지이다.

후에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동바시장은 후에 왕궁과 가깝고, 강변에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동바시장을 나와 한적한 주택가와 강변을 지나면 트랑티엔 다리가 보인다. 구스타프 에펠이 설계한 다리로, 마치 에펠탑을 눕혀 놓은 느낌을 주는 거대한 철 구조물이다.

후에 신시가지인 보티사우 지역의 밤거리 정경.

강남 신시가지로 건너오면 동바시장의 북적거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뀐다. 거리와 건물, 사람들 모습이 훨씬 더 깔끔하고 도회스럽다. 다리 남단부터 대로를 따라 걷다 후에 교육대학을 끼고 왼쪽길로 들어서면 보티사우 거리가 시작된다. 보티사우는 프랑스 식민치하에서 우리의 유관순 열사처럼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붙잡혀 19살에 생을 마친 소녀의

이름이다. 그런 역사 속 소녀 이름과 달리 거리 분위기는 밝고 흥겹고 활기차다.

후에 이틀째 반나절은 도심을 벗어나 사원과 왕릉 등 근교의 역사 유적을 둘러보는 게 좋다. 도심 가장 인근에는 티엔무 사원이 있다. 후에역에서 4떨어진 강가 언덕에 위치한다. 7층 석탑과 거대한 종이 유명하고,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사원이다.

후에역에서 남쪽으로 4지점에 위치한 투덕 왕릉은 응우옌 왕조의 4대 왕인 투덕 황제를 모신 능이다. 연못과 꽃이 많아 호젓하고 드넓은 정원 분위기이다.

투덕 왕릉에서 남쪽으로 7위치에는 카이딘 황제릉이 있다. 카이딘은 민생은 도외시하고 외세인 프랑스에 얹혀 국고를 탕진하며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군주로 유명하다. 고딕 양식의 건축구조물들이 유럽의 대성당처럼 웅장하고, 황제를 호위하는 석상들 면면이 진시황의 병마용처럼 위풍당당하다.

<·사진=이영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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