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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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료원 가정의학과 최경만

일 년 전 요양병원에서 일을 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노인들은 칭찬해 주어야해. 무조건 칭찬해 주면 좋아해.”

지난 50년간 아버지 말을 들은 적이 없었지만 이 말 만큼은 잘 듣고 있다.

의사 생활을 한지도 30년이 되어 간다.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주로 노인 환자분들의 주치의를 하고 있다. 그분들을 환자로서 돌본 다기 보다는 그분들과 함께 동행 하고 있다. 어떤 분들과는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나 어떤 환자들은 의식이 없다.

그런 분들과는 매일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며 혼잣말 하듯 인사하다 보면, 몇 달이 지나서 그분들과 연결된 나 자신을 느끼게 된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감사, 행복, 평온과 같은 감정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달되어 온다.

환자 한 분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나와 번갈아 가며 기도를 하신다. "주님의 뜻에 따라 환자들을 잘 볼 수 있게" 기도해 주신다. 나의 지식을 버리라고 하신다.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환자분들에게 내가 하는 행동이 최선이 되기만을 원하나 내 마음의 때를 벗지 못한다.

문득 문득 내가 참 사람으로서 환자를 보지 못하고 얇은 지식과 내 고집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음을 볼 따름이다. 하루에 한 번씩 백팔배를 올리며 나와 동행하는 분들, 한 분 한 분들을 떠올린다. 이 분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나를 비우고 이 분의 얘기를 듣기만 할 수 있는지 물어 본다.

이 분에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삶이 어떤 것인지, 내가 하는 일이 주님이 기뻐하실 일인지 묻는다. 내 지식과 뜻에 눈이 가려 참 모습을 가리지 않도록 기도한다. 나의 허물과 집착에 그분들과 신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기도한다. 정작 돌보는 이는 내가 아니라 그분들이다. 그분들의 조용한 얼굴에 내 찌든 때를 씻고 병실을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직도 어린 햇병아리 의사처럼 아무런 해답도 없이 병실에 들어갔다 그분들에게 해답을 얻고 나온다.

점심에 식당에서 동료의사가 말한다. “2층에 환자분이 돌아가셨어. 그래서 늦었어.”

나도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수고하셨어요.”

문득 내가 괴물이 되었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것밖에 할 말이 없는가?’ 현실에 너무 잘 적응해 살아간다는 생각에 뒷골에 소름이 끼친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보살님 눈에는 보살만 보인다. 부모가 아프면 자녀는 자신의 입장에서 병원 침대에 누워계신 부모를 바라본다. 막상 부모는 세상과 가족에 더 이상 연연해하지 않으며 떠날 준비가 다 되어 있어도, 자녀들은 후회와 미움, 죄책감 등으로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한다.

인생은 평생 세상이라는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겨우 마지막 순간에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짧은 기회가 주어진다. ‘슬퍼하지 마라, 괴로워하지 말라.’ 기쁘게 받아들이고 우리의 부모가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이자 가장 큰 선물을 제대로 받으라고 부탁하고 싶다.

아픈 사람을 본다는 것은 나 자신을 보는 과정이기에, 나는 아직도 환자를 보는 게 어렵고 두렵기만 하다. 매일 기도하고 명상하며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나 그 때뿐이고 나 역시 허우적대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언젠가 때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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