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정신적 뿌리 '조천야학당' 빈 건물로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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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에 참여한 학생·주민들 조천만세운동 참가
운영비·인건비 없어서 빈 건물로 남아 활용방안 필요
학생과 주민들에게 항일정신을 고취시켰던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조천야학당이 빈 건물로 방치됐다.
학생과 주민들에게 항일정신을 고취시켰던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조천야학당이 빈 건물로 방치됐다.

제주 항일운동의 정신적 뿌리였던 조천야학당이 빈 건물로 방치돼 활용방안이 필요한 실정이다.

조천야학당은 제주특별자치도가 4억원, 조천리마을회가 2000만원을 들여 2009년 옛 야학당 터를 매입해 지상 2층, 연면적 350㎡ 규모의 상설 전시관과 다목적실을 신축했다.

조천야학당은 독립운동가인 김시용 선생(1906~1945년) 등이 1925년에 설립했다.

김시용 선생은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동맹휴학을 주도했다가 퇴학을 당하자 고향에서 계몽운동과 항일운동을 했다.

야학당은 가난한 학생들과 청년, 부녀자들의 배움터였다. 특히 해녀와 청년들은 낮에는 바다와 밭에서 일하다 밤에는 공부를 하면서 조천야학당은 당시 전국에서 처음 개설된 노동야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노동야학 활동을 눈엣가시로 여긴 일제 경찰은 1930년 ‘허가도 받지 않고 불온한 민중계몽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6명을 재판에 회부했다. 이른바 ‘조천야학사건’으로 문을 닫았다.

정부는 1995년 김시용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 지역 출신 학생과 주민들은 19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조천읍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만세 시위를 주도한 김시범·김시은·김장환 등 애국지사 29명은 기소됐고, 23명은 형을 선고받았다.

야학당은 당시 원형 사진이 남아있지 않아서 현대식으로 복원했지만, 내부에는 유품과 자료를 전시했고, 밀랍인형으로 당시 모습을 재현했다. 학생들의 방과 후 특별 교습장소로 활용됐고, 주민을 대상으로 한문과 충효교실이 운영됐다.

하지만 운영비와 인건비를 마련하지 못하면서 조천야학당은 수 년전부터 제3자에게 임대됐다가, 최근에는 빈 건물로 남게 됐다.

강연식 조천리장은 “건물을 관리할 인력이나 해설사도 없고, 운영할 예산도 없어서 빈 건물이 됐다”고 말했다.

제주지역 항일운동 사적지를 연구해 온 강만익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은 “조천리는 항일운동의 성지인데도 조천야학당을 비롯해 독립운동가들이 살았던 집터가 방치됐다”며 “후대들이 항일정신을 배울 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될 수 있도록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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