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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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순 수필가

여름 장마는 대개 덥고 습한 공기와 높은 기온 탓에 숨이 턱턱 막힌다. 올 장마는 유독 길고 비가 많이 내렸다. 수많은 수재민을 거리에 나앉게 했다. 수해의 아픈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그들의 힘든 일상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태풍 바비가 온 나라를 다시 휩쓸었다. 찢고 파괴한 재해의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코로나에 수해와 태풍이 더해졌으니 폭염 속의 삶은 수난 살이다. 무엇부터,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고 그저 망연자실이다. 그렇다고 선뜻 모여들어 복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고 보니 살길이 막막하단 호소들이다. 이런 힘든 여름 나기가 내 생전에 또 있었나 싶다.

그래도 살아있는 한 삶을 즐기고 싶은 욕망은 저마다의 가슴속에서 꿈틀댄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피서라도 즐기고 싶어진다. 그래선지 제주는 지금 관광지마다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모처럼 나들이를 즐기고 싶은데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붐비니 거리두기가 어렵다며 불편과 짜증을 호소하는 현지인들도 많다.

그렇다고 바다 건너 다른 지방으로 떠날 수도 없는 형편이고 보면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은 외려 피서의 꿈을 짜증으로 대신해야 할 신세다. 피서를 갈지 말지 고민 중이란 내 이웃들도 많다. 혹시 간다면 한적한 야외에서 가족끼리 조용히 캠핑을 하거나 가까운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데 그도 어려울 것 같다며 불평이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꾸면 피서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디론가 떠나서 멋진 추억 그리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리란 보장은 적다. 십중팔구는 사람에 치이고 주차난에 짜증 나고 휴식은커녕 더위 먹고 고생만 잔뜩 하다 돌아오기 십상이다.

원정 피서를 떠나지 않더라도 집에서 멋진 피서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가까이에 있는 나무 그늘을 찾아 시원한 바람에 묻어나는 가을의 정취를 음미하거나, 집안에서 시원한 수박화채 옆에 끼고 앉아 영상 여행으로 남극의 빙하를 둘러보거나 아프리카의 열대 우림을 탐험해 보는 것도 생각보다 좋단다.

책캉스라는 신조어처럼 여행을 떠나는 대신 도서관이나 집에서 책을 보며 휴가를 보내는 방법도 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면서도 일 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요즘 세태에 큰맘 먹고 올여름 휴가는 책 몇 권 완독하는 것으로 휴가의 대미를 장식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음의 자양과 함께 자신에 대한 자긍과 위로가 덤으로 더해질 테니. 집안에 조용히 앉아 책 속의 행간에서 느린 여유를 맛보며 피서를 하는 것. 상상만으로도 멋과 운치가 흐른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생활의 허점을 호시탐탐 노리며 위험 수위를 넘나든다. 더위 속에서도 방호복으로 무장하여 코로나 퇴치에 혼신을 다하는 의료 종사자들을 생각하면 집콕하며 즐길 수 있는 피서만으로도 분에 넘친다. 재난의 상처와 시름으로 고생하는 재해민들을 위해 조그만 내 도움의 손길이라도 보탤 수만 있다면 그 또한 값진 피서가 되리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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