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언제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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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 시인

8호 태풍 바비가 요란하게 지나갔다. ‘바람과 비를 줄여 바비가 되었는지 모르나 소문과 달리 큰 피해는 없었다. ‘그 모진 바람이 코로나도 몰고 가버렸음 얼마나 좋을까라고 지인과 웃으며 나눈 인사가 헛말이 되지 않았음 참 좋겠다.

 

비 그친 하늘은 유난히 맑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가 자랑할 게 파란 하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중학생 때 들었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배고팠던 시절 가을 하늘은 유독 맑고 높았다.

어느 지인이 전해준 말.

여름휴가를 보내고 떠나는 손자와 공항에서 헤어지며 새끼손가락 걸고 가을에 만나자 약속했다. 추석에 보자는 뜻이었다. 손자는 서울 가서 엄마에게 가을이 언제 오냐고 자꾸 캐물었다.

그 때 창밖에서 시끄럽게 우는 매미가 귀찮아 무심코 던진 말이 저 매미 울지 않으면 가을이 성큼 온단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손자는 계속해서 울어대는 매미가 얼마나 미웠으면 느닷없이 전화로 아직도 매미가 울어라고 말하며 울어버렸을까. 얼마나 할머니를 보고 싶었으면 매미 타령을 했겠느냐고 잔잔하게 전해주는 말에 내 가슴은 그냥 일렁였다.

짧게 한 수 썼다. 그리곤 웃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손자 /가을에 만나자 했다//엄마, 가을은 언제와요?/오늘도 다섯 번째//

저 매미/울음 그치면/가을이 성큼 온단다.“

누가 뭐래도 가을은 시의 계절이다. 시를 읽거나 쓰지 않더라도 시심(詩心)이 우러나는 계절이다.

누군가에게 편지라도 쓰고 싶고, 잊어버렸던 친구에게 문득 전화라도 걸고 싶은 그런 가을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라고 노래한 시인 고은의 마음이 살갑다. 고등학교 시절 시몬, 너는 좋으니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라고 암송했고,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는 올 가을에도 라디오에서 울려나올 애송시이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은 순수한 감성이 맑게 흐르는 증거이리니 9호 태풍에 묻어올 가을을 조심스럽게 기도하며 기다린다. 용서와 화해를 담은 가을만 모셔오고 독선과 증오의 비바람은 조금만 갖고 오소서. ! 9월 하늘에 풍덩 빠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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