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 땅끝 거대한 산상도시 베일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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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구게왕국
수도 중심 6개 지구로 구성
13세기 전후 구게왕국 등장
황토산에 견고한 왕궁 조성
계층 따라 주거지역 달리해
현대 와서야 외부에 알려져
황토산 아래는 백성과 노예계급이 살았던 동굴과 움막이 있고, 산 중턱은 불교 사원과 승려들과 중산층을 위한 공간, 맨 위층은 왕과 지배계층을 위한 왕궁으로 구성된다
황토산 아래는 백성과 노예계급이 살았던 동굴과 움막이 있고, 산 중턱은 불교 사원과 승려들과 중산층을 위한 공간, 맨 위층은 왕과 지배계층을 위한 왕궁으로 구성된다

1차 세계대전 후유증이 어느 정도 치유될 때 쯤 세상은 다시 암흑에 휩싸였다. 세계경제 대공항의 광풍이 몰아친 것이다. 1933년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이 출간돼 인기를 끌면서 소설 속 지상낙원 샹그릴라가 모두에게 꿈의 이상향이 되었다.

독일 총리 히틀러는 다른 이유 때문에 동방으로 원정대를 보냈다. 샹그릴라가 순수 아리안 혈통의 진원지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 산악인 하인리히 하러는 당시 독일 정부 히말라야 원정대의 일원이었다. 그의 실제 경험을 담은 영화가 브레드 피트 주연의 티벳에서의 7이다.

영화 초반엔 인도 데라둔 지역의 포로수용소를 탈출한 주인공이 티베트 라싸까지 2000를 걸어가는 여정이 그려진다. 중후반부터 라싸를 보여주기에 앞서 영화는 초반에 티베트의 대자연 풍광을 극적으로 담아낸다. 인도 국경을 넘은 그가 며칠 밤낮을 쉼없이 걸어 지난 곳은 티베트의 오지로 손꼽히는 아리(阿里)지구의 자다(札達)현이다.

티베트 고원은 현 중국의 두 지역, 칭하이성과 시짱 자치구 전역을 아우르기에 칭짱 고원으로도 불린다.

과거엔 이 모든 지역이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민족의 땅이었으나, 1950년 중국 공산당이 점령한 이후엔 동서로 강제 분할됐다.

구게왕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카일라스 산 설경. 수미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구게왕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카일라스 산 설경. 수미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쪽 절반은 쓰촨, 윈난, 칭하이 성 일부로 편입되고 나머지 절반만 시짱, 서쪽 티베트자치구로 남게 된 것이다.

지금의 시짱자치구는 한가운데 수도 라싸를 중심으로 아리(阿里), 나취(那曲), 창두(昌都), 린즈(林芝) 6개 지구로 구성된다. 이들 중 아리지구는 중국인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티베트의 서쪽 끝, 인도 카슈미르 라다크 지역에 면한 오지 중 오지이다.

변방 오지인 이곳에도 한때는 티베트족 또 하나의 왕도(王都)가 있었다. 13세기를 전후해 700여 년간 엄연히 티베트의 역사에 등장했던 구게왕국이다.

아리(阿里)지구 서남단인 자다(札達)현에 존재하는 왕국의 유적지는 오랜 세월 베일에 싸여 있다가 현대에 들어와서야 바깥세상에 알려졌다.

티베트족을 최초로 통일시켰던 토번(吐蕃)왕국은 300년을 넘기지 못하고 9세기 중반 멸망했다. 이후 400년간 티베트는 춘추전국시대 같은 내부 분열의 시대를 겪었다. 구게왕국은 이때 생겨난 지방정권 중 하나였다.

토번국의 마지막 왕 랑다르마가 죽자 라싸는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분에 휩싸인다.

권력 암투에서 밀려난 그의 손자 지더니마(吉德尼瑪)는 라싸를 탈출하여 서쪽 멀리 떨어진 이곳 아리 지역을 장악해 다스린다.

지더니마가 죽자 왕국은 선왕의 유지에 따라 세 왕국으로 나뉘어 세 아들들에게 분배된다.

현 아리지구의 푸란현과 자다현 일대는 푸란왕국과 구게왕국, 그리고 인도 카슈미르 지역은 라다크 왕국, 이렇게 셋으로 나뉜 것이다.

구게왕국을 이어받은 셋째아들 더짜오(德朝)는 지금의 유적지 자리인 황토산에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왕궁을 축성하기 시작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증축은 대를 이으며 계속되어 황토산 전체는 어느덧 견고한 요새이자 주거지를 겸하는 거대한 산상 도시로 변모해간다.

300m 높이의 황토산은 크게 3개 지역으로 나뉜다. 여느 도시처럼 이곳 산상 도시도 구성원의 계급에 따라 주거지를 달리하는 구조인 것이다. 산 중간부터 아래 바닥까지는 백성과 노예 계급이 거주하는 수백 개의 동굴과 움막들로 구성된다.

산 중턱 허리 부분 일대에는 여러 개의 불교 사원과 승려들의 승방과 수도 공간이 있으면서 종교인과 중산층 구성원들이 함께 거주했다.

맨 위 정상부는 역시 지배층을 위한 왕궁으로서의 공간이었다. 물론 왕국 전체를 감시하는 전망대이기도 하면도 전쟁시엔 지휘 센터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자료에 의하면 구게왕국 유적지에는 토굴 879개와 방 445개 칸, 요새 58개와 비밀 통로 4갈래 그리고 불탑 28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런 험하고 높은 곳에 견고하게 꾸며진 공간들이 그저 감탄스럽고 경이롭게만 느껴질 뿐이다.

 

<·사진=이영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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