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런 세상에서 명예 있는 삶 살다
혼란스런 세상에서 명예 있는 삶 살다
  • 김문기 기자
  • 승인 202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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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최규일 선생의 절개론....(4)충신.지사

정몽주, 지조와 절개의 대명사로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큰 울림
박팽년.성삼문은 충절의 화신...생육신 신숙주는 숙주나물 빗대
안중근.한용운.최익현 주권 찬탈 일제에 항거...황현, 절명시 남겨
조선의 마지막 선비 면암 최익현 초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나라를 위하여 죽음으로 절개와 지조를 지켜 명예롭게 살다간 역대 충신들의 충절과 절의를 배우면서 인생 삶의 처세를 생각해 본다. 고려 말 포은 정몽주와 조선 초 매죽헌 성삼문의 절의가로, 그분의 충절가를 읊어 두 분의 거룩한 뜻을 기려본다.

▲정몽주의 단심가

ㄱ.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정몽주의 ‘단심가’)

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의 ‘하여가’)

ㄱ은 정몽주(1338~1392)가 고려왕조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충절로 뼈가 먼지가 되는 한이 있어도, 굳은 절개를 나타낸 절의가이다. 끝까지 새 왕조(조선)를 세우는 것은 아니 된다고 이방원의 회유가에 화답한 단심가요, 마지막 남긴 유언이다.

ㄴ은 고려가 멸망할 무렵, 훗날 조선조 태종이 된 이방원이 정몽주를 초대한 자리에서 지은 ‘하여가’이다.

고려 왕조면 어떻고, 조선 왕조면 어떠하냐.? 정몽주 자네와 함께 백 년까지 새로운 왕조를 누릴 것이라 회유하기 위해서 지었다는 시조이다.

이에 정몽주가 ‘단심가’로 거절의 뜻을 전달하자 이방원은 정몽주를 더 이상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해 부하를 시켜 살해했다. 비록 그의 몸은 죽었지만, 단심가는 지금도 만고상청 회자된다.

▲성삼문과 박팽년의 절의가

정몽주는 조선 선비들에게도 충절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정몽주의 단심가는 사육신 박팽년과 성삼문의 시조에서도 절의로 이어진다.

박팽년(1417~1456)은 수양대군(세조)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다가 영월로 유배되자, 단종과의 이별을 촛불에 이입시켜 이렇게 슬픔을 노래했다.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뫼라/야광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랴/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이시랴.

성삼문(1418~1456)은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발각돼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자리에서 절명시 한 수를 남겼다.

둥둥둥 북소리 울려 내 목숨을 재촉하니/머리 돌려 석양을 보니 해는 지려 하누나/황천 가는 길에는 주막조차 없다는데 /오늘 밤은 뉘 집에서 묵어갈거나.

성삼문의 절의가도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돼야 이셔/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천공의 절개가

단심가와 하여가 두 시조를 간추려 세상을 사는 처세를 천공은 이렇게 읊어본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리/(그래도)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이시랴.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데나 갈 수 없고 아무렇게나 살 수 없지 않은가. 외길로 한 평생을 헤엄쳐서 처세해 나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한평생을 지조와 정조를 지켜 옳게 살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찌 보면 ‘지조와 절개’는 인생관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아야 ‘험난한 세상, 혼란스런 세상에서 누(累)됨이 없는 한평생을 살며 죽어서도 거룩한 명예를 남길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것이 인생의 화두이며, ‘절개론, 신지조론’의 주제이다.

삼대가 멸족 당한 성삼문은 역사에 충절의 화신으로 길이 살아남았으나, 세조의 편에 서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생육신 신숙주는 상하기 쉬운 숙주나물에 빗대 그 이름이 전해 온다.

▲안중근 의사의 명언

안중근 의사 좌상.

‘불의를 보거든 정의를 생각해 보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의협심을 갖도록 하라’,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그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義士)는 위태로울지라도 그 기운은 구름과 같다’

안중근 의사(1879~1910)가 남긴 명언들이다.

그는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탈한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에서 사살했다.

이듬해 조선은 사라져 버렸고 국권회복까지 36년이 걸렸다. 안중근이 있었기에 36년 만에라도 나라의 주권을 찾은 것이다. 망국에 임해 지식인들은 붓을 꺾고 저항하는 사이 안중근은 모순의 근본 원인을 총으로 저격한 것이다.

▲매천 황현의 절명시

어지러운 세상에 떠밀려 백두의 나이에 이르도록/목숨 버리려다 그만둔 일이 몇 번이던가/오늘에야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바람 앞의 촛불 번쩍번쩍 창천을 비추네.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근화 우리 강산이 이미 망하였구나/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천년을 헤아리니/인간 세상 식자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

56세에 생을 마감하는 조선 말기 문신 황현 지사(1855∼1910)의 절명시다.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에 국권이 상실되자 500년 조선의 망국을 접하고 선택할 길은 달리 없었다. 죽음으로 항거하며 절의를 지키는 순절뿐이었다.

▲만해 한용운의 복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그것만은 복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절대적인 존재인 당신(조국, 부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읊은 ‘복종’이다.

복종도 복종 나름이다. 배신자나 역적에게 복종할 수 없다.

그는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요, 독립 운동가이며 승려다. 독립선언서에 공약 3장을 추가하고, 거사 당일 선언서를 낭독한 뒤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 면암 최익현

백발로 밭이랑에서 분발함은/초야의 충심을 바랐음이랴/난적은 누구나 쳐야 하니/고금을 물어서 무엇하랴.

독립운동가 최익현(1833~1906)의 창의시이다.

1905년 을사늑약에 저항해 의병을 일으켜 읊은 시이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일흔이 넘은 나이에 분연히 일어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항거하는 강렬한 의지를 표명한 투쟁 시다.

이 시에는 장쾌한 선비 정신이 드러나 있으며, 의병을 일으켜야 하는 취지가 선명하게 제시됐다. 그리고 초야에 묻혀 사는 늙은이지만 늘 충성을 잊지 않는 마음을 간직하고 살았으며, 그러기에 당연히 왜적을 물리치는 일에 나서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표명했다.

최익현은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돼 투쟁 끝에 옥사하셨다.

절개와 지조는 어떤 죽음인들 불사하며 갈라놓을 수 없다. 인생 삶은 역사다. 지금 우리는 충신·명장·지사들의 지조와 절개를 망각한 채 산다.

인간의 삶은 하나의 역사다. 개인의 생애와 행적은 개인의 생애사다. 지금 우리는 역사를 망각한 체 사는 게 아닐까?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잊혀져가는 역사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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