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밭에 어쩌다 맑은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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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구엄리 생이동산(下)
제주의 유일한 염전 ‘천연돌염전’
‘소금빌레’라고도 불리는 소금밭

 

구엄리 바다에는 보물처럼 숨겨진 특별한 곳들이 많다. ‘생이 동산’ 바로 옆에 위치한 ‘천연돌염전’도 그 중 하나다. 이 곳은 제주도에서 유일한 염전이기도 하다.
구엄리 바다에는 보물처럼 숨겨진 특별한 곳들이 많다. ‘생이 동산’ 바로 옆에 위치한 ‘천연돌염전’도 그 중 하나다. 이 곳은 제주도에서 유일한 염전이기도 하다.

다시 구엄리 이야기입니다. 구엄리 바다는 애월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습니다. 파란 물빛에 혹해서 바다에 빠져 있다가는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곳이기도 합니다. 구엄리 바다에는 보물처럼 숨겨진 특별한 곳들이 많은데요, 시인이 앞마당과도 같았던 생이 동산바로 옆에 위치한 천연돌염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제주도에서는 유일한 염전입니다. 소금밭은 구획별로 나눠져 있고 대대로 대물림도 했다지요. 그것도 딸한테 말입니다.

가부장적인 시대였지만 탐라라는 특별한 섬에선 딸을 귀하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거친 바다는 아버지와 아들의 목숨을 수시로 빼앗아 갔으니까요. 그 힘든 물질을 하고 억척스럽게 집안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운명이 바로 어머니이고 딸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들과 딸을 구분할 이유가 없기도 했을 겁니다.

이곳 돌염전은 말 그대로 바닷가 돌에서 소금을 얻습니다. ‘소금빌레라고도 부르는데 빌레는 제주에서는 흔히 넓은 들이나 밭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 소금바위 혹은 소금밭이라는 말입니다. 돌 위에 진흙으로 작은 턱을 만들어 밭처럼 구역을 나누고 구역마다 주인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처음 소금을 생산한 시기는 조선 명종 141559년 강여 목사가 부임하면서였다고 합니다. 소금이 귀한 시대였고 섬이라는 특성상 들여오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400년 가까이 주민들의 생업 수단이었다가 1950년 해방 이후 폐기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소금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더 이상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테지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고 살아낸 흔적을 곁에서 말없이 지켜볼 뿐입니다.

이곳 돌염전은 시인의 어머니에게도 특별한 공간이었나 봅니다. 시인의 어머니도 그렇게 애월 돌염전에 기대한 생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이곳은 농업이 주요 생업이 되었지만요. 바다의 날씨를 살피고 바다의 기분을 살피던 어머니는 요양원에 누워 있습니다. 섬망증으로 과거의 기억에 살고 있는 어머니. 그러다가도 어느 날엔 해맑은 바다처럼 출렁이며 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시인의 어머니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시고 올 칠월에 영면에 드셨습니다. ‘한사코 바다에 기대살던 생의 마지막은 다시 바다로 돌아갔을까요? 생의 무게를 벗고 저 망망대해를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길 바랍니다.

연극인인 정민자 2020 바람난장 대표가 문순자 시인의 시‘어쩌다 맑음’을 낭송한다. 전문시인인 딸이 어머니를 위해 쓴 아흔아홉의 무게를 아릿하고 저릿하게 불러낸다. 행간마다 그리움이 깊은 호흡으로 묻어난다.
연극인인 정민자 2020 바람난장 대표가 문순자 시인의 시‘어쩌다 맑음’을 낭송한다. 전문시인인 딸이 어머니를 위해 쓴 아흔아홉의 무게를 아릿하고 저릿하게 불러낸다. 행간마다 그리움이 깊은 호흡으로 묻어난다.

연극인 정민자님이 시인인 딸이 어머니를 위해 쓴 아흔아홉의 무게를 아릿하고 저릿하게 불러냅니다. 행간마다 그리움이 깊은 호흡으로 묻어납니다.

 

바다에 반쯤 잠겼다가 썰물 녘 드러나는

애월 돌염전에 기대 사는 갯질경 같이

한사코 바다에 기대

서성이는 생이 있다

 

그렇게 아흔아홉 세밑 겨우 넘겼는데

간밤에 육십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기 젖 물리란다며 앞가슴 풀어낸다

 

사나흘은 뜬 눈으로, 사나흘은 잠에 취해

꿈속에서도 꿈을 꾸는 어머니 저 섬망증

오늘은 어쩌다 맑음

요양원 일기 예보

-문순자, ‘어쩌다 맑음전문

 

 

이관홍 색소폰 연주가가 저마다 가슴 속에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을 불현 듯 소환한다.‘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어머니 얼굴이 둥싯 바다 위에 떠오른다.
이관홍 색소폰 연주가가 저마다 가슴 속에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을 불현 듯 소환한다.‘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어머니 얼굴이 둥싯 바다 위에 떠오른다.

색소폰 연주가 이관홍님은 저마다 가슴 속에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을 불현 듯 소환합니다. 그냥 부르기만 해도 자동적으로 눈물이 솟아나는 이름이 어머니이니까요.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어머니 얼굴이 둥싯 바다 위에 떠오릅니다. 그렇게 그리운 이름 하나 불러놓고 제주도 푸른 밤으로 건너갑니다. 언제 들어도 밤바다의 푸른 향기가 느껴지는 곡입니다. 음악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곳으로 데려다놓는 신비한 영혼입니다.

 

이날 바람난장 공연에는 구엄리 마을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송인수 이장님이 참석해 마을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이날 바람난장 공연에는 구엄리 마을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송인수 이장님이 참석해 마을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국악 연주가 현희순·전병규님이 좀처럼 듣기 힘든 궁중음악 경풍년을 연주합니다. 소금 연주는 구엄리 소금밭과도 어쩐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듣습니다. 풍년을 기원하고 축하하는 옛 선조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바다에 퍼지는 듯했습니다. 올해의 시름을 다 털고 내년엔 꼭 풍년이 오고 사람냄새 나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함께 빌어봅니다. 마지막을 장식한 꽃의 동화’(김수철 곡)를 들으며 꽃처럼 환하게 피어날 내일을 기다려 봅니다.

 

바다는 실컷 보고도 또 그립습니다. 어떤 물결이 마음을 수시로 흔들어놓는지. 이 가을엔 바다에 그리운 얼굴 하나 슬쩍 띄워놓고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하시지요?

 

음악 황경수(노래)

현희순·전병규(국악)

이관홍(색소폰)

시낭송 정민자·김영탁

그림 고은

사진 허영숙

영상 김성수

음향 최현철

글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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