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를 입고
원피스를 입고
  • 제주일보
  • 승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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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딸이 원피스를 사 주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편한 스타일이라 눈에 띄었다고 한다. 검정 바탕에 알록달록 잔잔한 꽃무늬가 예쁘다. 더위 타는 여름 한 철을 시원하게 보내게 됐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며 원피스를 입었다. 목에 화사한 스카프까지 매고 나서자 남편이 “좋은데.” 짧게 한마디 거든다.

늘 바지 속에 숨어 있던 흰 종아리가 쨍쨍한 햇빛 속으로 나왔다. 입은 듯 안 입은 듯 가벼워, 뙤약볕 품은 바람조차 시원하다. 발걸음이 절로 겅중거린다. 이래서 원피스가 좋다. 한 번도 입어 본 기억이 없는 것처럼 소녀같이 달떴다.

언제부턴가. 외출할 때는 거의 바지를 입었다. 활동하기가 자유롭고 편하다는 이유다. 구두도 낮은 것으로 신어도 어울린다. 스커트나 원피스는 스타킹까지 챙겨야 하고 굽이 높아야 태가 난다. 우아해 여성스러운 점이 돋보이지만, 조신해야 하는 짐스러움이 있다. 치맛자락이 펄럭이는 것도 신경 쓰였다. 무엇보다 나이 들어가며 다리가 굽어 벌어지는 모습에 자신이 없었다.

원래 원피스 마니아였다. 나비처럼 날고 싶은, 공주처럼 살기를 꿈꾸던 어린 시절이다. 여름철이면 어머니는 손수 원피스를 만들어 주셨다. 꽃무늬 포플린 질감에 흰 망사 레이스를 달거나, 잠자리 날개 같은 신소재 나일론이 유행이던 때, 원피스 치레는 나를 돋보이게 했다. 결혼해 딸을 낳고 대리만족이랄까. 무던히 예쁜 원피스만 찾아 입혔다. 가방을 메고 팔짝거리며 학교에 가던 뒷모습은, 어릴 적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얼마 전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등원한 것이 화제가 됐다. 논쟁이 된 것은 원피스가 국회의 격과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반대로 국회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갑론을박 분분했다. 젊은이답게 답답한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용기에 입이 벌어졌다. “국회의 권위가 양복으로 세워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에서 어떤 옷이든 입을 수 있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다. 국회 최연소 초선의원의 목소리는 신선했다.

국회의 중요 역할은 국민의 마음을 읽는 곳이다. 늘 검정 같은 어두운 정장에 넥타이까지. 그야말로 분위기 자체가 너무 엄숙했다. 점점 여성의원 국회 진출이 늘어간다. 특히 삼사십 대 진출이 두드러지다. 고루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오랜 관행을 깨고 싶다는 류호정 의원의 말에 동감한다.

늦은 감이 있으나 여성 의원이 변화의 물꼬를 텄다. 이왕이면 밝은 색에 활동적인 차림을 권하고 싶다. 권위적인 국회를 밝게 이끌어, 남성 의원들도 넥타이 풀고 일하기 편한 차림으로 나오면 어떨까.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진지하고 진솔한 토론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이끌어 낸다면 오죽 좋을까. 문제는 어떤 옷을 입었느냐가 아니잖은가. 국민의 마음을 살펴 최선책을 내놓는 의정활동이 됐으면 한다. 국회도 불필요한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 최소한의 규정을 마련할 것이란다.

지금까지 옷은 때와 장소를 가려 입는 게 일반적이 예도였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간접적인 의사 표현이자 그만의 개성이다. 사회나 대기업에서도 격의 없는 차림을 권장해 활동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옷이 몸의 주인 노릇을 할 수는 없다. 몸이 옷으로 묶인다는 것은 구속이요, 경직이다. 일할 때 불편한 차림보다 편해야 사고도 창의적인 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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