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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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9월 27일, 75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1945년, 나라가 해방되던 해에 창간했으니, 감회 곱절이겠군요. 사람의 나이 종심(從心)에 5년을 더 얹어야 합니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풍찬노숙 다 겪었으니 고난의 시절을 견뎌낸 용기와 강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군요.

미물에게도 있는 이름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해 濟州新聞→제주일보→제주新보→제주일보로 전전해 오다 본명 ‘제주일보’를 되찾은 게 지난 7월 15일이었습니다. 그날 필자, ‘뺏겼던 그 이름, 되찾다’란 글을 올렸던 게 떠올라 가슴 울렁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바라봐야 할 우리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미덕이 아닙니다. 이제는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닫힌 철비(鐵扉)도 반드시 열어야 할 그 계제이지요.

왜 대중이 그대에게 고개를 숙이는지요? 민중의 무지몽매를 계도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막중한 언론의 순기능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론 없는 사회는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특히 신문을 일컬어 ‘무관의 제왕’이라 하는 이유입니다.

우여곡절을 거쳐온 제주일보입니다. 그대 앞에는 탄탄대로가 있을 뿐 어떤 장애물도 놓여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75년을 다진 경륜이야말로 묵직하니 빛나는 그대의 자산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은 무관의 제왕’ 운운하며 한소리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직면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혼란스러워서입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지 않나요? 원인은 정치공학이 정론(正論)을 밀어내서지요. 진영 간 대립이나 다툼은 의당 그런다 치고, 또 보수와 진보의 이념 논쟁도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해독이 되지는 않습니다. 미래지향적 에너지는 고양돼야 하니까요.

위정자들이 막가고 있는 게 문제예요. 절충을 배제할 뿐 상대를 존중하려 하지 않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인의식이 미흡한 것 같아요. 반성과 통찰은커녕 해법을 찾아 혁신의 길을 제시하려는 고민이 부족합니다. 더욱이 정당하고 합당한 의견이나 주장을 부정하거나 외면합니다. 이성적으로 보려는 눈이 없어요. 토양이 척박한 땅에선 정론이 얼어버립니다. 문전옥답이 아니더라도 거름과 물을 주어야 합니다. 소중한 역사(役事)지요.

여기 신문이 나서야 할 여백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게 신문의 존재감이고 책무입니다. 잠자는 시민의 의식을 흔들어 깨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얼어버린 정론을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살아 있는 시민의 힘이니까요. 그래서 신문이 나서야 하고, 그 중심에 제주일보가 있어야만 합니다.

이제부터 제주일보가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나이 지긋하니 자라는 대신 뿌리를 널리 뻗어 혹여 훼손될 경우를 대비해 뿌리에 영양분을 갈무리하는 것입니다. 뿌리가 가늘어 물을 흡수하는 양이 적으니 더 부대끼다 보면 100년을 살게 되고, 100년을 다졌으므로 절대 안 무너집니다. 빨리 성장하는 나무는 무너지기도 쉽습니다. 나무가 한 개체로 오래 사는 비결입니다. 원줄기가 비스듬히 누워 땅에 닿은 가지에서 뿌리를 내리는 종(種)도 있습니다. 높이 17m, 지름 1m의 교목,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얘기입니다.

제주일보여, 그대 ‘75년’을 나무에 포개니 아우라, 눈부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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